[아론과 훌] 아프간 비극과 대한민국

등록날짜 [ 2021-09-07 12:35:53 ]

탈레반 아프간 점령…망명자 속출

정상국가 모색하나 공포정치 계속

국민 보호 못하는 국가가 정상인가

한국의 씁쓸한 현주소도 돌아봐야



지난 8월 사람들을 가장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아마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손에 장악당한 일일 것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하며, 그들 율법인 샤리아와 가부장 전통에 따라 야만적 공포통치를 하던 극단주의의 상징이었는데 미국에 의해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갔다. 그러던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파고들면서 부활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했고, 최강대국 미국이 거의 100조에 이르는 온갖 첨단무기를 버리고 허겁지겁 철수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을 느꼈다. 아프간을 벗어나려고 활주로를 이륙하는 군용기에 매달렸다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젊은이들. 아비규환 속에 어린아이들이라도 피난시켜 달라며 울부짖으면서 철조망 위로 아이를 던지는 부모의 절망. 공포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총과 몽둥이를 들고 폭행을 가하는 모습은 21세기 문명인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우리나라를 도운 아프간 협력자들이 ‘미라클 작전’으로 구조되어 한국에 왔지만, 아직 그 나라에는 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애타게 요청하고 있다.


정권을 탈취한 탈레반 집단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고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면서 화해를 가장하지만, 그 본질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선이 지배적이다. 당장 여성 인권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많은 여성이 다니던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탈레반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에는 국제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하고, 과학기술 교육사업도 진행해오던 아프간 여성 과학자 5명이 해외로 망명하는 등 고급 인력의 이탈 또한 심각하다. 아프간이 이른바 정상국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고, 경제 제재가 시작되면서 물가가 40% 이상 폭등하고, 실업률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재건에 필요한 사회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자국을 버리고 해외로 계속 도피하려고 하므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아프간 사태는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국토와 국민을 지키는 최고의 주권집단인데, 정부가 무서워 살던 집도 이웃도 다 버리고 국민이 타국으로 망명한다면 이를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과 목표가 다른 나라들에 의해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면 그 나라가 제대로 된 국가이며, 국제 협력 시대에 제대로 존립할 수 있을까.


아프간 외에도 이 같은 비정상적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전히 권위적 왕정을 유지하면서 공개처형 같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중동의 국가들, 30년 넘게 내전을 끝내지 못하고, 국민을 기근과 질병으로 죽게 만드는 소말리아, 소수 군부의 기득권을 위해 자국민을 고문하고, 총격을 가하는 미얀마 같은 나라를 우리는 국가라고 부르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전후(戰後) 가장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룩해 현재 전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선진국들만 가입하는 G7의 새로운 멤버가 될 가능성이 큰 나라이고, 한류와 K팝 등이 전 세계에 유행하면서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뽐내는 21세기의 새로운 선진국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OECD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국가 행복지수도 거의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일류국가라 하기에는 여러 가지 씁쓸함이 남는다.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국가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나라의 국격과 장래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볼 때다.



위 글은 교회신문 <715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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