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욕 달고 사는 우리 아이들

등록날짜 [ 2017-12-04 15:14:27 ]

공중도덕 무시, 안하무인 청소년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안타까워
참 배움은 또래나 미디어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본 어른들에게서 나와


#. 시내 한복판 종각역에서 인천행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인데 운 좋게도 앉을 자리를 얻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의 바로 옆자리다. 소년은 화면이 금 간 스마트폰 하나를 만지작거리면서 안절부절못한다. 뭐가 그리 지루한지 몸을 차분히 두지 못하고 부산하다.

그러다 친구와 통화하는 건지 “여기 서울역. XX 멀어. 아직도 많이 남았어. 씨. 거긴 사람 많아?”라며 주위 어른들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간간이 섞어 쓰는 욕설이 거북하고, 별 용건도 없어 보이는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기가 민망했다. 책 읽기도 집중이 안 되고 길을 잃었다. 그때다. ‘탁’ 하고 소년이 분신처럼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자동 반사적으로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그 많은 ‘발’ 중에 “C발”이다. 나도 모르게 소년의 얼굴을 한번 휙 쳐다본다. 분명 내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니, 피곤함에 지친 어른들이 빽빽하게 서서 가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대놓고 욕이라니…. 도대체 웬 소란이니?’

마음속에서 뭐라 뭐라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소년이 뭔 상관이냐는 표정과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내 눈길을 받아치자 살짝 눈길을 피했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통화하고 욕하면 안 되는 거잖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공중도덕이라는 거 너도 알지? 부모님이 가르쳐 주시고 학교에서도 배웠지? 응?’

소년의 얼굴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은데, 내 말풍선은 그저 무대 위 방백이 되어 서둘러 훌훌 사라진다. 휴, 어쨌든 다행이다. “뭘 쳐다봐요?”라며 ‘퍽’ 주먹이라도 한 대 날아왔다면 어쩔 뻔했나? 비록 할 말은 못 했지만 사건과 사고 많은 험한 세상에 무사한 저녁이 도리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 북한 김정은도 ‘중2병’ 걸린 대한민국 중학생들이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얼마 전에는 여중생 여럿이 또래 여학생 하나를 마구 때려서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이 보도되는가 하면, 지난봄에는 청소년이 동네 초등생을 유괴해 잔인하게 살해한 끔찍한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잔인함이 수위를 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어른들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할 말을 잃는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의 한 민속학자는 “노인 한 분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어른의 경험과 식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에 대한 참다운 배움은 또래 친구나 스마트폰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아본 분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머리 희끗희끗한 그분들은 젊은 세대가 책으로 배우는 역사를 굽이굽이 생생한 체험으로 살아왔다.

성경은 어르신들의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잠16:31)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잠20:29)이라고 했다. 젊은 세대가 ‘틀딱(틀니 낀 노인이 ‘딱딱’거리면서 이야기한다)’ 같은 비하하는 말로 어르신을 조롱하고 무시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조금, 아주 조금은 철들었구나!’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오미정 집사
유치부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5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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