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앨범에 실린 ‘흑역사’ 사진은
빼내서 없애고 기억에서 지우면 되지만
하나님 앨범에선 결코 숨길 수 없는 만큼
주님 앞에 선 그날 난 무엇으로 뵈올지
육신의 때에 추한 죄 깨끗히 회개하리

얼마 전, 남편과 친정에 갔다가 어릴 적에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을 열어 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사진들이 꽂혀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열어보는 앨범이라 페이지마다 흥미롭게 감상했다.

사진들은 거의 시간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날짜가 기록된 사진도 있어서 언제쯤 찍은 사진인지 내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사진을 찍던 당시 풍경이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진도 있었고, ‘내가 이런 곳에 간 적이 있나?’ 싶은 낯선 풍경도 있었다. 그러다 옆에 있던 남편이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여기 통통한 아이는 누구?”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아직도 이 사진이 남아 있었다니….’

열 살 즈음에는 살이 무척 쪄서 어린 마음에 일부러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고, 그나마 보관하던 사진들도 앨범에서 쏙쏙 빼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때 사진이 여태 앨범에 꽂혀 있어서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성경은 여태껏 살아온 세월이 내가 기억을 하든 못 하든 분명하고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고 말한다(계 20:12-13). 앨범 속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처럼 과거의 순간들이 띄엄띄엄 기록돼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명백하고도 빠짐없이 매 순간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록돼 있다고 경고한다.

주님 앞에 선 그 날에, 나의 지난 세월을 내 놓고 모두 공개해야 할 그 날에, 나는 무엇을 가지고 주님을 뵐 수 있을지…. 그때에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모습이 찍힌 사진을 없애듯 숨길 수도 없다. 그래서 그날이 오기 전에, 지금 내게 육신의 때라는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부끄럽고 추한 죄는 예수 피 공로를 붙들고 회개해서 지워 버려야겠다. 오직 주님이 하셨다고, 주님이 나를 쓰셨다고 고백할 순간들만 기록되게 해야겠다.

흘러간 세월 속에 새겨진 내 삶의 흔적들. 그 무엇으로도 수정할 수도 없고,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때 지은 죄의 흔적이 결코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죄가 아니라고 오해한다고 해서 그 죄가 자연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들이 내 속에 세월이라는 벽 뒤로 숨어 있지 못하도록, 마지막 날에 그 죄가 소리치지 못하도록, 모두 생각나도록 기도해야 하고, 예수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로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을 만날 때,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정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도록 거룩한 모습들만 사진처럼 남아 있도록 내 영혼의 때를 위한 신부 단장을 매일매일 해야겠다.

/정지인
교회학교 교사 / 現 치과의사

위 글은 교회신문 <61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