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새봄 맞아 내 인생 모래시계도 새롭게

등록날짜 [ 2019-03-12 18:39:17 ]

1년 전 만 80세 되는 날까지 신앙생활
점검 위해 노트에 성경 읽기와 기도 시간
기록해 돌이켜보니 참담함 그 자체
노트 찢어냈지만 하나님 눈은 못 피해


강원도 동해안 바닷가에서 살 때 친척 방문이나 업무차 종종 서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중증 길치 환자라 지도책에 의지해 서울 목적지까지 도달하기는 그야말로 고난의 역경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경우엔 집사람에게 괜한 성질을 부렸고 죄 없는 아이들은 내 눈치를 살펴야 했다. 내비게이션이 나오자 앞뒤 볼 것 없이 샀다. 세상에 요렇게 신통방통할 수가 없었다. 서울 나들이는 물론 전국 어느 곳이든 길 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은 더는 내 인생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을 듯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라이트 불빛도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전방 2km 앞에서 고가도로로 진입하세요”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랐건만 고가도로는 나오지 않았고 한참을 헤맨 후에야 새로운 경로를 따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그 부분의 고가도로가 철거됐다는 사실을 다음 날 뉴스를 통해 알았다. (청계고가는 2013년 7월 1일부터 8월 31일 사이에 철거됐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내비게이션 기능을 가장 짧은 거리로 안내하도록 설정했다. 거리가 짧으면 그만큼 일찍 도착하리라 생각했다. 그날 내 차는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의 수많은 산을 굽이굽이 돌아야 했다. 산술적 거리는 짧았지만 시간과 고생은 곱절이 들었다. 문득 떠오르는 지난날의 회상이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종착지는 어디며, 무엇을 지표로 삼고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최단 거리가 300km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한 경로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약 1,200km에 불과하다고 한다. 수십 일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40년이나 걸렸다. 더욱이 성년자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수단과 방법, 방향과 경로 설정이 잘못되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의한 것으로 단순히 거리로 계산할 부분은 아니다.)


꼭 1년 전, 모래시계 노트를 만들었다. 만 80세가 되는 날까지의 일수를 산출하고 이를 월 단위로 구분한 후 기상과 취침 시간, 성경 읽기와 기도 시간을 기록했다. 신앙생활에 긴장감을 더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1년을 돌이키니 도저히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죽을 듯 살아야 하는데 죽은 듯 살아온 결과다. 결국 12장이 노트에서 뜯겨 나갔다. 비록 내 기록에서 지워졌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사라지겠지만 내 삶의 궤적을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동자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극작가 겸 소설가 버나드 쇼는 생전에 자신의 비문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썼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경각심을 주는 말이다. 상처 없는 영광은 없다. 영적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기 위해 순간순간 깨어 있어 뜨겁게 주님 사랑하다가 가나안 천성에 들어가야겠다. 새봄과 함께 모래시계 노트를 복되고 아름다운 열매로 채워 갈 것을 다짐해 본다.



/윤웅찬 집사
15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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