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짧은 이별 그리고 영원한 만남

등록날짜 [ 2010-04-05 08:33:35 ]

#1. 서해안 초계함의 침몰로 한국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아들과 형제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을 구하러 뛰어든 50대의 군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을 잃은 이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누구를 원망하랴.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에 연예인 최 모 씨의 자살은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자살은 또 하나의 자살을 불렀으니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비통할 일이겠는가.

20~30대의 젊은이들은 인생의 찬란한 꽃도 피우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려다 죽고,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낀 또 한 명의 젊은이는 결국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니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2.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그의 최측근인 강상인(당시 병조참판)과 장인인 심온(당시 영의정)이 사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외형적인 이유는 이들의 반란죄였지만,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을 당시에서나 지금에서나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 이들을 거울삼아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분명 세종의 왕권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러나 당사자인 세종은 얼마나 심경이 착잡했겠는가. 자신 때문에 가장 아끼는 인물을 죽여야 했으니 그 고충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어쨌든 세상은 자기의 직위와 권세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보장받는다. 길어야 80년의 삶을.

#3. 어떤 이는 죽음 이후의 사후를 모르니 이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또 어떤 이는 사후를 부정하며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영원한 시간 속에 짧디 짧은 70~80년의 세월을 사는 우리에게 단지 몇 십년 일찍 죽고 사는 것 때문에 서로를 모함하고 비판하고 또한 죽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보면 얼마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심한가. 그나마 70~80년도 살지 못하고 죽은 젊은이들의 인생은 또한 얼마나 허무한가. 그러므로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초조함 속에 살아가는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죽음 이후의 세계와 그 세계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명확히 알기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시고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셨으니 그 예수를 믿는 누구나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다.

70~80년 짧게 만나고 그 이후 영원히 헤어진다면 그 만남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므로 영원한 만남이 있는 천국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 만남을 위해 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위 글은 교회신문 <1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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