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07·下)] 복된 우정 나눈 ‘십 황무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땅(12)

등록날짜 [ 2021-05-20 19:46:29 ]

하나님의 뜻을 우선한 요나단
황무지 피신한 친구 다윗에게
사울왕이 절대 해치지 못하고
훗날 임금이 되리라고 격려해



<사진설명> 십 황무지 전경.  십 황무지는 유대광야에 속해 있고, 엔게디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녀야 했으므로 추적하기 어려운 황무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진설명> 십 황무지 주변 지도. 예루살렘이 있는 산악지대와 사해 사이에 유대 광야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유대 광야 남쪽에 ‘십(Ziph)’이라는 도시가 있고, 그곳에서 엔게디에 이르기까지 25km 전체가 황무지다.



<사진설명> 마온 광야 전경.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삼상23:25). 십, 갈멜, 마온은 서로 인접해 있던 지역이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마온 황무지까지 추격해 왔으나 블레셋의 침공 소식을 전해 듣고 다윗의 추격을 멈추고 철군한다.



유대광야 동쪽으로 향하면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 엔게디가 나온다. 척박한 지역이지만 오아시스를 이루는 좋은 조건 때문에 엔게디는 요새의 역할을 했고, 유다 지파의 왕 다윗도 사울을 피해 이곳 동굴에 머물렀다. 그 부근에 또 하나의 유다 지파 성읍 십 황무지(Wilderness of Ziph)가 있다. 십 황무지 역시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의 피신처였는데, 요나단이 피신한 다윗을 이곳에서 만났다. 이후 남유다 초대 임금인 르호보암(재위 B.C. 930~913)이 요새를 세우면서 십 황무지는 유다 땅을 방어하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윤석전 목사: 십 황무지는 어디인가요?


홍순화 교수: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 남쪽의 힌놈 골짜기부터 브엘세바(Beersheba)까지 땅을 차지합니다. 유대광야 남쪽에 유다지파에게 배당된 ‘십(Ziph)’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부근에서 엔게디에 이르기까지 25km 전체가 황무지입니다. 이곳에 갈멜(Carmel), 마온(Maon) 같은 지역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개념에서 보면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의아합니다. 십이라고 하는 성읍 자리에 가 봐도 어떻게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 수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십 황무지에서 엔게디까지 가는 길은 더 험난합니다. 25km 되는 이 지역에 나무 한 그루 없고 물 한 방울 나오는 곳이 없어 여기가 진짜 황무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삼상23:14).


윤석전 목사: 십황무지에서 일어난 성경 속 사건을 소개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십황무지는 유대광야에 속해 있고, 엔게디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다녀야 했으므로, 누구도 추적하기 어려운 황무지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황무지는 다윗이 피해 다니던 지역 중에 하나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을 격려합니다. 요나단은 “아무리 사울이 너를 죽이려고 해도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며 “너는 반드시 사울을 이어 왕이 될 것”(삼상23:16~17)이라고 격려하면서 다윗과 마지막으로 만난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요나단은 어떻게 다윗을 목숨처럼 사랑할 수 있었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권혁승 교수: 요나단은 개인의 욕심을 버렸습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탁월함과 그가 훌륭한 지도자라는 점,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의 편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편에 선 다윗처럼 요나단도 하나님과 같은 편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아버지가 사울이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 편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아름다운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윤석전 목사: 요나단이 아버지의 적인 다윗을 가까이에서 도와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뜻과 섭리 속에 나타난 신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에 담긴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요나단은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보고 욕심을 버렸습니다. 저는 요나단을 보면서 은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개발해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은사와 관련해 또 한 가지 기억할 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개발하되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왕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이 더 훌륭한 왕이 되리라 판단했고, 그는 자신을 비우고 다윗을 세웁니다. 사울 때문에 뒤엉킨 이스라엘 역사가 요나단의 분별력과 바른 자세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격려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절실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이지 않은 후 병사 3000명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나요?


권혁승 교수: 성경을 보면 다윗이 마치 대화를 하듯 사울과 정예부대 3000명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이야기하는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면 성경은 조작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듯이 말할 수가 있느냐고 잘못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엔게디의 지리적 상황을 이해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엔게디는 한 계곡을 내려가서 반대쪽 계곡으로 올라가려면 한나절이 걸릴 만큼 깊은 계곡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 사이는 불과 50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말해도 정작 뒤쫓아 가려면 계곡을 내려가서 올라가야 되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성경 내용을 오해하고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인 여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 지파의 땅 엔게디에서 사울과 다윗의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다윗은 적인 사울을 한 동굴에서 칼을 빼어 죽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을 내가 어찌 감히 죽일 수 있으랴.’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크게 보고 하나님을 경외해 신앙적으로 그 싸움을 이미 이긴 것과 같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또 십 황무지에서 만난 다윗과 요나단은 분명히 적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인 사울과 다윗이 적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왕이 될 수 있던 요나단은 왕의 모든 권위를 포기하고 다윗을 도왔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세운 기름 부은 왕이 다윗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도왔고, 다윗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울을 당장 해치울 수 있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을 보입니다. 신앙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유다 지파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살면서 후손에게 그 축복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삶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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