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32)] 모세를 건진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이 있는 ‘룩소르’
이집트편(3)

등록날짜 [ 2019-01-31 01:14:10 ]

옛 이집트의 수도로 웅장한 신전 터와
바로의 무덤인 ‘왕들의 계곡’ 있지만
무너진 터는 인간의 욕망 덧없음 보여줘


모세를 바로의 왕궁서 자라나게 한 건
당대 최고의 애굽 학문 배우게 한 후
출애굽 지도자로 세우려 하셨기 때문



<사진설명> 하트셉수트 장제전 내에서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 중인 윤석전 목사와 탤런트 한인수 장로.


윤석전 목사: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집트 왕 바로는 유대 사내아기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출1:16). 모세의 부모는 갓난 아들을 죽일 수 없어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웁니다. 이때 모세를 건진 바로의 딸로 추정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이 룩소르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하트셉수트(Hatshepsut) 장제전에 가려면 나일강을 건너야 한다. 룩소르(Luxor)는 이집트 건축물의 보고(寶庫)이며 신(新) 왕조(B.C.1567~B.C.1085) 오백 년의 수도였다. 신전은 거대한 암석들로 싸여 있다. 제18왕조 때 건설됐고, 남아 있는 장제전(葬祭殿)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 비록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그 흔적의 규모만 보아도 당시 신전의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최고 신 태양신 신전은 그 위세를 여전히 담고 있다. 여왕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자 장제전을 건립했지만 현재는 허물어진 돌 터만이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이 신전 안에는 하토르(Hathor) 신전이 있다. 하토르는 ‘은하수’라는 뜻으로 고대 이집트인은 젖소의 젖을 은하수로 여겼기에 젖소 모습의 하토르 벽화가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집트의 많은 신을 완전히 파멸시켰다. 그 신들이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선포였다. 그 입증 과정이 열 가지 재앙이었고 그 후 출애굽은 실현됐다.


윤석전 목사: 룩소르는 어떤 도시인가요?


권혁승 교수: 이집트 중·상부 중심지가 룩소르입니다. 나일강 삼각주 지역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는 660㎞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기차로는 11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 거리입니다. 성경에서는 룩소르라 하지 않고 아몬 신의 도시라는 뜻의 노아몬(No Amon)이라 합니다.


윤석전 목사: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에서 어떤 도시였으며 현재 어떤 흔적이 남아 있나요?


김은호 교수: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신전이 있고, 서쪽에는 무덤을 두는 지역적 특성이 있습니다. 룩소르에서는 화려했던 옛 신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신전의 우아한 기둥들, 나일강을 따라 길게 늘어진 여러 주상(柱像, 돌이나 나무로 기둥처럼 세워 놓은 신상(神像))을 통해 영광스러운 바로의 과거 모습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중심의 신의 세계가 얼마나 웅장했는지 알 수 있는 장소입니다.


윤석전 목사: 하트셉수트 여왕이 모세를 구출했던 바로의 딸이라는 학설이 분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출애굽 시기에 관해 주장이 갈립니다. 성경에 애굽의 왕이 ‘바로’라고만 나와 있어 어떤 왕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바로’는 이집트 왕의 호칭이기에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출애굽은 기원전 15세기 설(說)과 13세기 설로 나뉩니다. 15세기 설에 따르면 하트셉수트가 모세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하트셉수트는 힉소스 제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제18왕조의 셋째 왕 투트모세 1세( B.C.1525~B.C.1512? 재위)의 딸입니다. 하트셉수트는 이복오빠인 넷째 왕, 투트모세 2세와 결혼을 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합니다. 투트모세 2세가 첩을 들여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투트모세 2세가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그 아들이 어린 나이에 투트모세 3세가     되어 왕위를 잇자 하트셉수트가 22년간 섭정(攝政)합니다. 22년간 이집트의 실질적 통치자였습니다. 하트셉수트가 모세를 건져내 양아들로 키웠다면, 섭정이 끝난 후 권력을 잡은 투트모세 3세( B.C.1504~B.C.1450? 재위)가 히브리인들을 박해한 왕이고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 2세가 출애굽 시기의 바로입니다. 15세기 설에 따르면 출애굽 시기는 아멘호테프 2세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 되는 B.C.1440년이라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룩소르 ‘왕들의 계곡’에 있는 왕들의 무덤으로 가보겠습니다.


나일강에서 약 5㎞ 떨어진 룩소르 서안(西岸)에는 18왕조 때부터 만들어진 이집트 왕들과 상류 귀족들의 무덤,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이 있다. 무덤 주변에는 당시 무덤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대규모 마을을 이룬 모습이 남아 있다. 이집트 왕족들은 자기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고자 계곡 깊숙이 터널을 만들고 입구를 막아 외부세계와 차단했다. 투트모세 3세를 비롯해 바로 64명이 터널 무덤에 묻혔는데 지금도 발견되는 미라와 부장품들은 사후 세계에서도 권세를 누리려는 왕족들의 헛된 욕망을 담고 있다. 전신(全身)이 보이게 그려진 인물화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내세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관을 대변한다.


윤석전 목사: 이집트 왕들은 자기 권위를 드러내려고 ‘피라미드’라는 큰 무덤을 세웠는데 왜 이 시기 왕의 무덤은 왜소했는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왕들의 계곡’이라 불리는 산 계곡 일대에는 왕릉 수십 기(基)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왕릉이 아니라 산을 뚫어 만든 무덤이며 ‘터널 무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입구를 막아 놓아서 무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했는데, 이는 무덤 안의 비싼 부장품들이 도굴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집트 왕들이 성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성경 외의 다른 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은호 교수: 투트모세 3세 벽화 비문(碑文)에 성경의 사건을 뒷받침해 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관원 세 명이 봉을 들고 있는 그림 옆에 ‘막대기가 내 손에 있으니 게으르지 마라’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것은 노예들을 하역시키는 관원들의 모습입니다. 그 앞쪽에는 ‘그들은 자기가 밟고 있는 진흙 안에서 나온 포도나무 덩굴과 같고 돼지들보다 더 더럽다. 그 의복은 진흙으로 끈적거리고 가죽 벨트는 낡아 떨어져 가고 있다. 강풍 속에 걸어가는 그가 비참하다. 믿을 수 없는 바람이 부는 밖에 있어야 하니까. 그의 옆구리는 아프다. 그의 팔은 일로 허물어져 내린다. 그가 먹는 것은 자기 손가락 모양 같은 빵이고 한 절기에 단 한 번만 몸을 씻는다. 그는 철저히 비참하게 될 뿐이다’ 하는 글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 벽화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그가 통치했던 모든 기록과 죽은 이후 세계들을 같이 보관하는 기록의 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룩소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서편으로 나뉘어서 문헌들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권혁승 교수: 이집트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은 새로운 시작,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지역이라 생각해 바로를 비롯해 이집트 신들의 신전(神殿)이 있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라 하여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집트 거대한 문명 속에서 하나님을 섬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생활을 말해주세요.


김은호 교수: 경제학 이론인 종속이론은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약소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식민민족이었고, 이집트는 거대한 문명을 이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이사야 3장 16절에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하였습니다. 또 한 여인의 무덤에서는 그 부장물들로 온몸에 액세서리를 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문화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늘 유혹받으며 살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를 건진 사람이 바로의 딸, 하트셉수트 여왕이라면 모세는 왕족이었을 텐데 이집트 관리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친 사건을 설명해 주세요.


권혁승 교수: 하트셉수트의 섭정(攝政) 기간이 길어지면서 투트모세 3세와 하트셉수트의 갈등이 모세와 갈등도 가져왔으리라 여겨집니다.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였다는 점은 그 뒤에 정치적 음모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자랐는데 그것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요?


김은호 교수: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왕궁에서 애굽의 학술을 다 배우게 했다고 합니다(22절). 그 시대 최고 수준의 이집트에서 인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을 배웠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스데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났다(23절).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운 후에 하나님의 주권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광야에서 40여 년을 보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세웠던 언약, 아브라함의 후손을 땅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이루고자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 지도자를 훈련하려면 그 시대 최고 학문 한가운데서 그것을 익히고, 알게 하시고, 그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셨다고 생각됩니다.


윤석전 목사: 인간이 신이 되겠다고 노력해도 절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죽어서 무덤에 가서라도 자기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려 했지만 죽으면 끝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죄와 마귀, 질병, 저주에서 온갖 고통을 당할 뿐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절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주와 질병에서, 악한 마귀 사단에게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떠나면 모든 고통이 끝나고 천국의 영원한 해방을 누릴 것입니다. 그날까지 믿음 안에서 주를 섬기며 영혼의 때를 위하여 값지게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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