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52)] 하나님의 역사가 서려 있는 베히스툰 절벽 다리우스 비문
이란 편(9)

등록날짜 [ 2019-07-30 12:15:57 ]

가장 강력한 페르시아 왕의 등극 과정을
절벽에 3가지 쐐기문자 1200행으로 조각
막강한 권력 배후엔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있어


윤석전 목사: 베히스툰에는 바사제국의 위대한 왕 다리우스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투쟁한 과정과 이유가 자세히 기록된 비문과 조각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 보겠습니다.


카스피해(海)에서 가까운 이란 북부는 일조량과 강우량이 풍부해 농사짓기에 최적의 장소다. 하마단 남서쪽에서 104km 떨어진 곳에 500m 높이 베히스툰산이 있다. 이 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산 절벽에 2500년 세월을 견뎌 낸 비문과 부조물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인 장교 헨리 롤린슨이 밝힌 비문 내용은 메소포타미아 토판(土版) 문서 해석에 큰 공헌을 했다.


윤석전 목사: 비문에 하나님의 어떤 역사가 서려 있는지 궁금합니다. 베히스툰은 지리학적으로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교수: 고대 바사제국의 영토였던 악메다(Achmetha)는 현재 이란 하마단(Hamadan)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104km 떨어진 곳에 ‘신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베히스툰산이 있습니다. 바그다드와 연결된 통상로(通商路)가 이곳을 지나면서 도시가 세워졌습니다. 베히스툰은 아주 절묘하게 지어졌습니다. 땅에서 약 100m 높이에 조각과 비문이 있어 2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의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약 1200행에 이르는 베히스툰 비문은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 3가지 쐐기문자로 기록됐는데, 교차 해석을 하면 쐐기(설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 고대문자 해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도움을 준 로제타석의 이름을 따 ‘페르시아의 로제타석’이라 부를 정도로 유명한 고고학 자료가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비문에 기록된 다리우스 왕의 왕위 계승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B.C. 521년 바사제국은 왕위 계승 문제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제국을 세운 고레스 왕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 왕은 안정적 왕권 계승을 위해 동생을 암살한 후, 이집트 원정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왕궁 제사장 가우마타가 자신을 고레스의 동생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켜 왕으로 즉위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캄비세스 왕이 급히 이집트에서 돌아오던 중,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에 캄비세스 왕과 함께 떠났던 그의 친척뻘 다리우스 장군이 여섯 장군의 도움을 받아 가우마타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비문은 이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진위(眞僞)가 불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다리우스가 왕궁의 반란을 진압해 왕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비문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바사제국 최고의 신 아후라마즈다의 권위를 빌려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얻고자 했던 다리우스 왕의 정치적 선전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베히스툰 비문에는 거짓된 왕위 계승자의 처단과 더불어 신의 뜻에 따른 왕위 계승 정당성을 내세우고자 하는 다리우스 왕의 의도가 담겨 있군요. 베히스툰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자그로스산맥의 낮은 구릉지에서 솟은 베히스툰 산에 다리우스 왕의 비문이 있다. 비문 상단 부조물에는 다리우스 왕과 그가 처단한 왕 10명이 새겨져 있다. 그들을 바사 최고의 신 아후라마즈다가 비호하는 형상이 새겨져있는데, 현지인들은 이 산을 신(神)이 머무는 신령한 산으로 여긴다. 다리우스는 산 절벽에 자신의 왕위 등극 과정을 쐐기문자 1200행으로 기록했다. 이 글엔 자신의 왕위 등극은 신의 섭리였음을 알리려는 다리우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런 다리우스를 경배하기 위해 그의 후손은 이 신령한 산을 끊임없이 오른다. 다리우스는 이란의 고대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었고, 그 막강한 힘의 배후에는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있었다.


윤석전 목사: 베히스툰 비분이 발견된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1830년대 페르시아 지역에 파견된 영국 장교 헨리 롤린슨(Henry C. Rawlinson)이 베히스툰을 방문했다가 비문을 발견합니다. 특별한 곳에 새겨진 큰 비문에 관심을 가진 롤린슨은 나름대로 연구를 합니다. 전문가도 아닌 군인이 당시 해독하지 못한 쐐기문자 해독에 도전한 것입니다. 비석이 매우 높은 곳에 있어 현지 소년이 목숨을 걸고 올라가서 떠온 탁본을 보고 전문(全文)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비문을 처음 발견한 연대는 1835년이지만, 비문 내용이 발표된 시기는 무려 11년 뒤인 1846년이고, 본격적인 연구는 1850년 정도에 진행됩니다. 군인인 헨리 롤린슨은 이 비문을 연구해 ‘쐐기문자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됐고, 베히스툰 비문은 고고학적 중요 자료로 남게 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도로의 발전은 그 나라의 문명 발전이나 전쟁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 중근동의 도로들은 어느 정도로 발달했나요?


우택주 교수: 고대 근동지방은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육상교통만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도로가 발달된 데는 두 가지가 주효했다고 봅니다. ▲우편(郵便)과 왕의 칙령(勅令)을 신속하게 지방에 전달하고 지방의 조세와 조공을 중앙으로 모으기 위한 경제적 목적 ▲빠른 군사 이동으로 지방 반란을 진압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길을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도로가 있어야 국가 간에 무역이 원활하고, 경제적 이해관계를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 시 군대가 도로를 이용해 움직여야 했기에 정치적, 군사적인 목적으로 도로를 닦는 일은 필수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길을 닦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페르시아도 광활한 영토를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서 길을 닦는 일을 제일 우선시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내에는 ‘해변길’과 ‘왕의길’이라는 두 고속도로가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중근동 지역 패권을 장악했던 바사제국은 주로 어떤 길을 통해 영토를 정복했나요?


홍순화 교수: 페르시아는 특별히 ‘왕의길’이라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냈습니다. 이 길은 요르단 지역을 관통해 다메섹으로 올라오는 ‘왕의도로’와 다릅니다. 페르시아 제국이 만든 ‘왕의길’은 페르시아의 중심 수도(首都) 수사에서 그들이 최초로 정복한 사르디스(Sardis)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이 길은 2703km로 엄청난 길이입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열악한 조건인데도 우편물과 공문(公文)이 이 길을 통해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다리우스는 넓은 사막 지역에 도로를 건설해 바사제국이라는 거대한 왕국을 지배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문명, 문화의 발달에 도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겠습니다. 성경과 고고학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홍순화 교수: 성서 고고학은 증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확실히 하고 신앙의 확신을 객관화합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 성경을 못 믿겠다는 입장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고고학적 조사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유물을 다 조사한 것도 아니고, 해독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20:29)”라고 하셨습니다. 고고학 증거가 믿음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윤석전 목사: 베히스툰 비문은 성경적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우택주 교수: 베히스툰 비문은 다리우스 왕이 왕권을 잇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매우 높은 암벽에 세 가지 언어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당시 왕권이 얼마나 강했는지, 또 그가 왕권을 선전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권은 오늘날의 정치입니다. 비문에서 다리우스 왕이 자신의 왕권 찬탈이 제국의 신 아후라마즈다의 섭리에 따른 일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당시 신앙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합리화하는 데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지만, 이면에 신의 이름을 빌어 정치적 행동을 합리화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삶과 역사 속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북왕국 예후 장군이 오므리 왕조를 정복하고 왕권을 이어가는 과정을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언 활동과 연결해 말합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어느 한 장군의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신앙은 정치적 현실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장에서 숨 쉬고, 그곳에서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죄를 범해 그 죗값으로 어떤 절망적인 사건을 맞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우리가 베히스툰 석비에서 다리우스의 사건을 알 듯,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우리를 알아 우리의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며 영원한 그 날을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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