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45>] 구원은 무조건적 보증인가, 조건적 보증인가
영원한 구원(Eternal Security)의 보증에 관하여 ①

등록날짜 [ 2012-05-01 13:20:11 ]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증(영구한 보증)한다는 견해와
계속적인 믿음을 요구(조건적 보증)한다는 견해의 차이

많은 크리스천은 그들의 생활 중에 습관적으로 범하는 죄 때문에 날마다 고민할 것이다. 시시때때로 회개하지만 불가피하게도 습관적으로 같은 죄를 반복해서 범한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 크리스천은 이 문제에 관해 대체로 두 가지 견해 중 한 가지를 견지한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선물은 절대적으로 값 없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는 크리스천으로 살 때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에 계속해서 짓는 습관적인 죄악을 포함한 어떤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분리할 수 없다는 논리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또한 우리가 삶 속에서 범하는 죄에 붙들리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도록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6~31절에는 살면서 의도적으로 짓는 죄로 말미암아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10:26~31).

크리스천 대다수는 성경의 구절들을 어떻게 균형 있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상대할 때 이런 구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래 구절들은 그 의문의 답을 찾는 단서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2:11) 복음주의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구원하셨고, 의롭다 칭하셨다.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모든 면이 온전하게 되기까지(살전5:23) 계속해서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벧후3:18).

복음주의자 상당수가 이런 성화(聖化) 과정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삶 속에서 회개 없이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범한 죄는 결국 구원을 잃게 하는지는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 이래로 성도의 견인(堅忍: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는다는 뜻) 문제(크리스천은 마지막까지 구원의 믿음 안에서 보존되도록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하셨는지 아닌지에 관한)는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이슈 중 하나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노년에 쓴 책을 통해서 “견인(perseverance)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게 하려고 은혜 중에 선택한 모든 이에게 주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견인이라는 선물은, 잘 산 삶에 대한 보상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대가성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따라 주신 순전한 은혜의 선물이다. 펠라기우스 외에 많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이해한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종교 개혁 기간에는 존 칼뱅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그는 견인이라는 선물을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확증으로 이해했다. 이런 견인의 선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다고 믿는 자들에게 확신을 제공해주었다.

재침례 교인이나 로마 가톨릭 교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력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610년 알미니안주의자가 “믿는 자들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조건적 보증의 견해를 주장했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의 사상에 뿌리를 둔 칼뱅주의자의 견해는 다섯 가지 포인트(TULIP)를 강조하는 교리 중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으로써 강조했다.
 
오늘날 복음주의도 계속해서 이런 이슈로 논쟁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보증을 고수하는 많은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전통을 따른다. 역사적으로 알미니안주의자는 조건적인 보증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몇몇 알미니안주의자는 일단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구원이 보증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제부터 이런 두 가지 구원의 보증에 관한 관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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