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물건이야기] 비스듬히 누어 먹을 수밖에 없는 낮은 상
식탁

등록날짜 [ 2013-07-29 14:44:32 ]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누가복음 22장 30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태복음 15장 27절)

이스라엘 민족은 돗자리에 앉거나 낮은 탁자에서 식사했다. 돗자리는 짚이나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다. 낮은 탁자는 높이가 약 30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앉았다. 신약시대까지는 식탁 곁에서 옆으로 누워서 먹었다.

보통 왼쪽 발꿈치에 기대어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오른손으로 먹었다. 무릎을 굽혀 발을 등 뒤로 가게 했다. 예수께서 이런 자세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을 동안에, 누가복음 7장 36~38절에 등장하는 한 여인이 예수의 뒤편에 서서 발에 향유를 부었다. 만일 예수께서 의자에 앉아 계셨다고 한다면 이러한 행동은 거의 일어날 수 없다. |

이스라엘 풍습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에는 설명해 주는 주석을 덧붙여야 적절하다.
신약성경 많은 구절에 등장하는 ‘식탁’이라는 낱말은 식탁 그 자체보다는 식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눅22:30)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모두가 나누어 가지게 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실 식탁은 영성으로 가득한 곳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먹는 이에게 생명을 공급한다. 음식에 쓰이는 모든 재료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빚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서로 다른 생명을 먹이고 살린다. 그리고 서로 먹고 먹히는 연결고리는 반드시 희생을 전제로 한다. 내가 죽음으로써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생명으로 전환된다. 이 사실은 결국 내 자아가 죽을 때 영성의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속 진리를 확인하게 한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서 축사하시고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는 기독교 역사에서 주의 만찬의 시작이라고 기록한다. 구속 사역을 기억하는 주의 만찬을 오늘날에도 계속 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잊지 말고, 나아가 그 소식을 모든 이에게 전파하라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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