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이야기 193] ‘바벨탑의 교훈’ 반복해서는 안 된다

등록날짜 [ 2019-01-08 06:05:21 ]

노아 후손들 번성과 안정된 생활
자신들이 힘써 이룬 결과로 오판
도와주시는 하나님 점점 잊어가
하나님 말씀 순종 않는 인간에겐
오직 혼란만 있을 뿐 교훈 보여줘


대홍수 심판으로 사람들은 죄에 대한 엄중한 결과를 보았다. 심판을 경험한 사람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은 번성하고 안정된 생활이 자신들이 힘써 이룬 결과물인양 오판하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점점 잊어갔다.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창11:1). 언어는 자연적으로 생성됐거나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부여받은 능력이다. 노아 당시 사람의 언어는 마치 하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동일(同一)했다. 상호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었고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이 비슷했다.


아라랏산 근처에서 생활하던 노아의 후손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고자 이동했다. 시날(Shinar) 평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 바벨론 지역이다. 물이 풍부하고 넓은 평지로 둘러싸인 비옥한 토지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창11:2).


‘땅에 편만하기를’(창9:7)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려고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에 정착했다. 시날 평지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의논했다. 벽돌을 구워 성(城)과 대(臺)를 쌓아 하늘 꼭대기까지 올리자고 했다. 이렇게 바벨탑의 기초가 만들어지고 벽돌과 벽돌이 쌓여 큰 성곽과 탑이 우뚝 세워졌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 에덴동산에서 지은 죄(창3:5)가 대(代)를 이어 사람들 본성(本性)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원죄(原罪)다. 죄로 오염된 인본주의의 실체와 그 결과물이 바벨탑을 쌓아 올린 사람들의 동력(動力)이 됐다.


당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은 오직 그들만의 의지와 의논의 결과였다. 하나님 없는 계획과 인본주의적 노력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하나님은 죄를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창11:7). ‘혼잡케’는 마구 뒤섞어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유리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져 그 조각을 다시 이어 맞출 수 없게 되듯, 인간들 사이에도 언어의 혼잡으로 산산이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바벨’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혼란만 있을 뿐이라는 엄숙한 교훈을 준다. 성도는 그 영혼이 거듭났다 할지라도 몸은 여전히 죄로 오염된 채로 남아 있다. 성도는 선을 행할 의지를 갖고 있지만, 죄로 오염된 육신의 충동으로 순간순간 죄를 범하게 된다.


죄로 오염된 육신을 하나님 말씀 아래로 쳐 복종시키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기도해서 회개함으로 성령 충만하여 영혼의 때를 위해 사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07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