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28] ‘기이히 여기다’는 ‘경탄’의 의미

등록날짜 [ 2018-06-28 13:32:55 ]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는 믿음 없는 것, 믿음 있는 것처럼 외식하는 것, 교회에서 욕심과 이권에 이끌려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만을 꾸중하셨다. 반면에 주님은 무엇을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셨을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7:9).

로마 병정 100명을 통솔하는 백부장(百夫長)은 군기가 시퍼렇게 선 로마 군대 시스템에서 상사가 내리는 명령의 절대적 권위를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예수님 말씀이 로마 군대 상관의 명령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부하가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명령만 내려주소서. 그러면 그대로 될 것을 제가 압니다”(눅7:7~8)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이 로마 장교를 “기이히 여겼다(눅7:9)”고 번역됐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 느낌과는 차이가 있다. ‘이상하게 여겼다’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기이히 여기다’는 헬라어 θαυμάζω(다우마조)로 영어 ‘wonder’의 어원(語原)이다. 이 영어 ‘wonder’는 실제로 (1)‘이상하게 여기며 궁금해 함’ (2)‘경탄함’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 문맥에 따라 의미를 분간해야 한다. 가령 “I wonder who killed him.”(나는 누가 그를 죽였는지 ‘궁금해’)의 예는 (1)에 해당하고, “What a nice belief. It’s a wonder.”(대단한 믿음이구나. 정말 ‘놀라와’)는 (2)에 해당하는, ‘경탄’의 뜻이다. 눈치챘겠지만 우리말 성경은 ‘경탄’ 의미의 θαυμάζω(다우마조; wonder)를 “기이히 여겼다”고 번역한 것이다. 물론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마22:22)처럼 ‘이상하게 여기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백부장의 믿음에 관하여서는 ‘경탄’이다. 주님이 그 로마 장교의 믿음에 참으로 감탄·탄복하시는 칭찬 장면을 ‘θαυμάζω(다우마조)’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살후1:10)에서도 ‘기이히 여김’, 곧 θαυμάζω(다우마조)를 썼다. 여기서 ‘기이히 여김’이 얼마나 엄청난 ‘경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주의 종의 칭찬을 받아도 신이 펄펄 나는데, 우리 주님의 감탄을 받는다면 그 기쁨이 어떨까? 주께 칭찬과 상을 받는 비결은 ‘믿음’과 ‘회개’다. 주님이 감탄하시는 장면은 예외 없이 “믿음을 보시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라며 물러서지 않은 이방 여인(마15:27), 옷깃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으로 믿은 혈루증 여인(마9:20~21), 일곱 귀신 들렸다가 나음 받고 향유 옥합을 깨뜨린 막달라(눅8:2), 제지당해도 소리 지른 바디매오(막10:46~48)…. 이들의 믿음에 감탄하시고 믿음대로 되게 해주셨다. 모든 예배, 모든 순간에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은 지금 이 순간도 찾고 계신다. 그 믿음이 감탄할 만해서 반드시 상 줄 만한 이를. 그 비결을 아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한마디로 극명하게 정리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



위 글은 교회신문 <58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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