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용어 알파와 오메가·47] 그리스도의 부활은 ‘맹세’할 만한 팩트

등록날짜 [ 2019-04-23 15:45:22 ]

은행 대출을 받으려고 담보를 제공할 때, 남의 소유를 동의 없이 제공하면 사기(詐欺)가 된다. 그래서인지 주님은 “도무지 하나님의 것인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으로 맹세하지 말라”(마5:34~35)고 하셨다.


여기서 ‘맹세하다’의 헬라어는 ‘옴누오 올로스(ὀμνύω ὅλως)’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행위를 뜻한다. 지식이나 이론을 주장하려고 ‘절대로’, ‘진짜로’, ‘맹세컨대’ 같은 부사어구를 많이 쓴다면 교만이다. 아무리 확신(確信)하는 사안이라도 사람은 틀릴 수 있고 모든 것은 변한다.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주님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자신을 확신했다. “그럴 일은 죽어도 없습니다.” 신념을 확신하면 교만이 된다. 신념으로 예수를 “주여!” “주여!” 부르는 것으로는 끝까지 견디지 못한다.


나도 나를 못 믿는데, 하물며 타인의 보증을 선다면 더더욱 교만이다(잠17:18). 성경도 이미 수천 년 전에 빚보증을 서지 말라고 당부했다(잠22:26). 보증을 뜻하는 ‘아라본(ἀρραβὼν)’은 안전을 보장하려고 맡겨두는, 잘못되면 돌려받을 수 없는 선금(先金) 또는 등가물이라는 뜻이다. 보증설 때, 이미 잃은 돈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왜 고대에 이런 제도가 정착했을까? 사람은 분위기, 감정, 자기 생각, 이론에 취해 정말 약속을 지키고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충만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100% 지킬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완벽해 보일수록 이는 맘몬(Mammon, 물신)의 완성도 높은 덫일 가능성이 크다.


믿음은 확실하다는 어떤 경험도 지식도 아니다. 수련회 캠프파이어에서 고조된 감정으로 흘린 눈물의 서원도 아니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죽으실 때 까지는 여느 십자가 처형자 중 하나로만 알았는데, 그가 부활하셨다. 죽음을 이긴 자는 아무도 없는데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들, 성자 하나님임을 입증하셨다(롬1:4). 부활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행17:31)를 주셨다. 수많은 증인도 남기셨고(고전15:6), 성령을 보내셔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가 누구신지 깨닫게 해주셨다.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던’ 제자의 신념은 하룻밤 사이에 변질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 무서워 도망간 제자들까지도 다 돌아와 끔직한 순교를 당할지언정 예수를 증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목격한 부활이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곧 팩트(fact)이기 때문이다(요2:22).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이 내 사건으로 실제가 되면, 내가 누구이든, 어떤 직분을 맡았든, 무슨 대단한 공부를 했든, 오직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예함을 아는 것보다 중요하고 흥분되는 일은 없게 된다. 맹세할 만한 것, 곧 확신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딤후3:14~16)뿐임을 알면 알수록 확인하게 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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