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56] 들풀보다 못한 ‘헛된 영광’

등록날짜 [ 2019-09-05 15:15:33 ]

사단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자기가 영광을 받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만들어진 천사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도록 아름다움을 갖추고 온갖 보석으로 장식됐었다(겔28:13). 창조될 때부터 비파와 소고 같은 악기가 예비됐으니 사단의 음악성은 어떤 인간 음악가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단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능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갔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에 대한 갈채가 자신을 향한다고 착각하다 결국 자신이 영광의 주인공이 되려고 마음을 굳혔다.


급기야 자신의 수하 천사들을 포섭해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올라 하나님과 비기리라고 혁명을 시도했으나 진압됐고, 동조자들과 함께 흑암에 갇혔으나 저들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위하여는 죽어 주신 적이 없다. 오직 여전히 성공하지 못한 혁명에 대한 통한과 분노, 창조주를 끝내 이기겠다는 악랄함, 영원한 형벌에 대한 절망뿐이다. 그런데도 타락할 때부터 하던 짓 그대로 지금도 자기가 영광받고 싶어 한다.


사단은 자신과 그 하수인들(귀신)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풍속(course of this world)에 따라 온갖 종류의 우상을 만든다. 조상, 대자연, 상고(商賈)가 만들어 낸 온갖 제품, 대중적인 스타나 콘텐츠에 대한 광적인 추종은 인간들이 다 무릎 꿇고 우상숭배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말세의 가장 큰 특징은 ‘나 자신’을 역대 최강의 우상으로 등장시키는 것이어서 자기사랑(self esteem), 헛된 자랑(empty pride)에 빠져 SNS에 비춰지는 ‘내’가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의 ‘나’보다 중요하게 만든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라는 말씀에서 허영은 κενοδοξία(케노독시아)로, 풀이하면 첫째 ‘헛된 영광’(vain glory)이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갈5:26)에서도 원문은 ‘헛된 영광’에 케노독시아란 단어를 썼다. 아무리 큰 상을 받고, 큰 인기를 누렸어도, 시간이 지나서 돌아오는 것은 녹슬고 방치된 트로피와 허탈함뿐이다. 공연이 끝나면 텅 빈 무대만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들로 시기하고 다툼이 생긴다. 이런 다툼은 예수 사람이 아니요, 여전히 내가 주인 된 자기애(self esteem)와 헛된 자랑(empty pride)의 결과인데, 이를 통칭하여 허영, 곧 케노독시아라고 한다.


솔로몬의 영광도 들의 풀만도 못했다. 대중은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자리에 누가 앉는지도 모른다. 광적인 추종자들을 이끌고 다니던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드 머큐리도 “나 살려 줘”(save me), “나 자살해. 누가 좀 말려 줘”(보헤미안 렙소디)라며 외로움과 허탈을 평생 호소하다 에이즈로 죽었다. 사단은 세상이 추구할 만한 것이 있다고 속이지만 다 부질없는 ‘헛된 영광’일 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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