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97]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찌니라

등록날짜 [ 2021-11-17 11:52:28 ]

교회를 다니는 우리는 ‘나름’ 선한 구석들이 있다. 어떤 이는 지식으로, 성실함과 재능으로, 심지어 경건함의 훈련이 몸에 배든가 그 외 밑도 끝도 없이 ‘나름’ 믿는 구석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놓치는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아이러니다. 비유하자면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집 안의 주인을 만나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 그 담을 뛰어넘으려고 무공을 연마했다. 하루 일천 번씩 수십 년 수련했으나 아직은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담 안의 집에서 주인이 나왔다. 그리고 곁에 다가와 말을 거는데 “잠깐만요, 아직 수련을 안 채웠어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욥이 그랬다. 하나님께 복 받아 부유하던 욥은 자녀들이 밤새 잔치를 하고 나면, 혹시라도 그들이 마음으로라도 하나님께 죄짓지 않았을까 무조건 번제부터, 그것도 안전하게 머릿수대로 드리고 보는 사람이었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1:5). 이는 욥의 결벽증이자 어느새 교만의 원천이 되었다. 그가 사단의 공격으로 자녀들이 죽고 아내가 떠나고, 재산도 다 날리고 피부병을 앓아 깨진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어 대는 처지가 되었을 때, 비록 하나님을 직설적으로 원망하지 않았지만 더한 소리를 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자신이 태어난 날을 하나님이 왜 만드셨나, 어머니의 태는 왜 건강했던가, 산파는 왜 왔던가 등 장황한 저주로 대신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욥의 믿음의 친구들이랍시고 와서 “너의 그 고난을 보면 감춰진 죄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궁하는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욥도 지지 않는다. 결국 그 와중에 욥과 그의 세 친구는 서로 옳다고 언쟁을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지구와 우주의 탄생 기원과 과정을 두고 토론하는, 심오한 삼천포로 빠진다.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은 인생의 극한 고통을 두고도 가소로운 우주 논쟁을 펼치고 있는 욥에게 말씀하신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욥38:2~6).


욥기 38장 전체는 그동안 욥이 저지른 추태에 대한 하나님의 일침이자 회복을 위한 치료다.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찌니라”(욥38:9~11). 현대영어성경(ESV)이 직역한 “Your proud waves must stop!”(욥38:11)이 욥기의 핵심이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할 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저주했다. 이때 옆에 있던 장수 아비새가 가서 죽이겠다고 하는데도 다윗은 “하나님이 저주하라시는 것이면 어찌하려는가”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욥도 이 일 이후 결벽증에 가까운 교만한 사람이기보다 다윗과 같은 내려놓는 자로 바뀌었다. 훌륭하다 할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므로 경계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우리 마음속의 바리새인, 교만의 물결(proud waves)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72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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