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99] 죄에 대하여라 함은
περὶ ἁμαρτίας(페리 하마르티아스)

등록날짜 [ 2021-12-17 18:34:44 ]

요한복음 16장 9~11절은 성경 66권 중 가장 핵심을 예수께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보배로운 구절 중하나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이 세 구절은 ‘죄’, ‘의’, ‘심판’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한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나의 수많은 악행과 악한 생각 그리고  내가 죄라고 미처 깨닫지도 못한 죄들(sins)이 무척 많다. 이 모든 죄악을 예수님의 보혈 앞에서 ‘내’가 다 기억해 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우리는 가망이 없다. 내가 의라고 생각한 것들이 더 심각한 죄일 때가 부지기수이고 성령께서 내 악함을 그대로 보여 주시면 견딜 사람이 없다. 


그렇게 가망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περὶ  ἁμαρτίας, 페리 하마르티아스), 영어식으로 설명하자면 ‘Sin’이라는 대표단수를 통해 모든 죄를 아우르는 ‘죄 전체’, ‘죄의 본질 자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하신다. “죄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πιστεύω(피스테우오), 곧 사실로 인정하고 이 신뢰로 따르는 것, 영어로는 ‘believe’가 아니라 ‘believe in’ 또는 ‘believe on’으로 번역된다. 나를 행동으로 맡길 수 있는 ‘믿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인으로 그렇게 믿음으로써 나의 죄성과 모르는 죄까지 대신 해결하심이 유효해진다는 핵심이다. 누군가 높은 절벽에 밧줄로 걸어 놓고 외줄타기를 할 테니 자신에게 업히라고 할 때, 그가 성공하리라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실제로 업힐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극단적인 예일 수 있으나 예수님께 전적으로 업힐 수 있을 만큼의 믿음(believe on)이 모든 죄(Sin)를 해결한다. 반대로 ‘죄’ 가운데 있는 이유는 안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천국을 믿는다면 비리와 축재(蓄財)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행20:28) 배신하고 지체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의’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의’라고 말씀하실 줄 예상하기에 예수님의 이 정의는 뜬금없게 들릴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건방지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는 하나도 없으니, 오직 의는 처음부터 주님이 부활하심뿐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이해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하신 말씀과도 같다. 


앞의 ‘죄’를 정의한 것처럼 모든 ‘의’를 포괄하는 ‘의 자체(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시네)’의 정의는 ‘나’에게 전혀 있지 않다.  오직 주님이 육체로 내어 주어 완전히 죽으시고 그 육체로 부활하셨고, 그 육체로 승천하셨기에 우리는 그 육체를 볼 수 없게 된 것으로 의를 이루심을 예수님이 한마디로 축약해 주셨다. 그러므로 여전히 ‘내가 어쩌고’, ‘내 의’에 집착하는 상태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 접근하지 못하고 ‘내 이야기’로 장황해진다.



위 글은 교회신문 <72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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