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10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את-ֶהעלָםֹ (에타올람)

등록날짜 [ 2022-01-25 11:48:49 ]

기독교인들에게 복’이란 내 자격, 내 능력으로 도무지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저주와 멸망을 끊어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칭한다. 그리고 ‘행복’이란 그 복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서는 훌륭한 ‘행복론’ 저서다. 가장 영화를 누렸다는 솔로몬왕은 전도서 시작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라며 ‘헛되다’는 단어를 37번이나 등장시킨다. 솔로몬이 헛되다고 말한 이유는, 첫째 사람은 선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전3:16).


두 번째로는 거창한 허상으로 잃어버린 인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전도서 3장 2절부터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모든 날들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시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中)고 하셨다. 우리가 목표를 위해 발버둥치고, 시간을 앞당기려 무리수를 두고, 절망이 찾아오면 끝이라며 맘대로 결론짓더라도 하나님이 끝이라고 할 때까지 끝이 아니다. 거창한 허상 탓에 주님이 붙드셔서 누워 자고 깬 소중한 오늘이 복인 줄도 모르며 보냈다.


궁극적으로 인생이 공허해지는 이유는, 사람은 영적존재라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면 무슨 목표를 이룬 들 공허하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中). 여기서 히브리어 ‘영원’은 ‘את-ֶהעלָםֹ (에타올람)’으로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God put the ‘wisdom of the world’ into the man(영원을 사모하는 지혜를 사람에게 넣어주셨다)”다. 그러므로 ‘영원’에 맞닿지 않은 것은 본능적으로 공허하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3:14)의 증거대로 지혜의 종국은 하나님을 경외해 영원을 위해 하나님의 행하심을 구함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전3:12~13)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선을 날마다 구한다. 다른 모든 것은 허무하나 숨을 쉬는 복부터 모든 복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뢰하여 영혼의 때를 위해 하나님으로 선을 행하는 기쁨은 상위 1% 부자들의 상태와 비교가 될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9~10). 이 말씀대로 사는 자의 행복, 소외된 이들과 나눔의 십일조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즐거워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자의 기쁨(신12:17~19)으로 거창하고 헛된 조바심을 없애자.


위 글은 교회신문 <73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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