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108]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도다
καινὴ κτίσιςּ(카이네 크티시스)

등록날짜 [ 2022-04-26 20:03:24 ]

어릴 때부터 사건사고를 언제나 요리조리 잘 피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고난이 와도 금세 이기고, 상처를 남기지 않아 인성에 금이 가지 않는다. 남들은 죽어도 안 믿겨진다는 성경 말씀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진리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삶의 고난이 있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를 위해 더 나은 부활(히11:35)을 주시고자 허락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학창생활, 입시, 결혼생활, 직장생활 등에서 굴곡지지 않는다. 신앙의 방황이 와도 심하게 돌아가지 않고 조금만 징계를 받아도 곧바로 정신 차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늘 배어 있다.


결론적으로 이는 본인이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의 강력한 은혜와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님이 기도를 쉬지 않은 결과이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이 아들로 여기고 거짓 없는 믿음을 칭찬하고 개척한 교회를 맡겼던 디모데. 그는 병약해서 사역에 지장을 받았고, 바울이 쇠사슬에 매여 옥에 있을 때 ‘오네시보로’만이 부끄러워 않고 바울을 찾았고, 그사이 ‘데마’ 같은 동역자들이 배반하는 가장 힘들던 와중에 스승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부끄러워하고 낙심에 빠졌다. 도리어 그때 옥중에서 바울은 “너의 믿음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정직한 것”이라고 위로하였고 고난받음을 부끄러워 말라고 권면했다.


이렇게 실상을 안다면 큰 재산을 물려주는 가문이 부럽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가문, 왕가, 재벌이 결합할지라도 그 인생이 겉으로는 화려했어도 인생까지 행복했던가. 그러나 우상에게 한 번도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킨 집안(출20:5~6), 늘 새벽과 정한 시간에 기도하시는 조부모와 부모를 둔 가문들을 관찰해 보면 앞서 말한 신기한 공통점들이 거의 발견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집안이 정반대라면 어찌할까? 혹여 무속인 집안이라면? 엄청난 방해들이 따른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말씀하신다. ‘새로운 피조물’을 뜻하는 ‘καινὴ κτίσις(카이네 크티시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바뀐다는 것은 이전의 약점이 수정되고, 업그레이드되는 수준을 초월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선포한다. ‘이전 것’은 ‘παρέρχομαι(파레르코마이)’, 즉 지나갔다는 말을 덧붙여 강조하는데, 이는 헬라의 법적용어이기도 해서 “효력을 상실하다”, 즉 지금의 전문용어로 “기한이익의 상실”이며 더는 저주의 소구권이 없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더는 과거의 저주, 집안의 유전병, 가정폭력 내력, 어떠한 중독, 잘못된 사고방식, 관습, 불행과 가난도 대물림이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도 악한 영들은 참소하며 “네 까짓 게 별 수 있느냐”라고 속이려 드니 무슨 배짱으로 기도하지 않겠는가? 작정기도는 내가 새로운 믿음의 조상, 또는 믿음의 계보를 이을 계승자라는 사명감으로 결단하고 모든 흉악의 결박을 끊어 내고 자손들에게 축복의 통로를 여는 또 하나의 절호의 기회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7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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