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두 주인 섬기려다 책망받은 두아디라교회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4)

등록날짜 [ 2015-07-06 11:31:03 ]

이중적인 인생을 사는 교인들에게 회개 촉구해


<사진설명> 두아디라교회 옛 터.

두아디라는 버가모와 사데 중간에 위치한
, 규모는 작지만 상공업이 발달하여 다양한 직종의 직공들과 상인들의 조합이 성행했던 도시다. 바울 사도의 2차 선교여행 때 바울 사도에게 전도를 받았던 옷감 장수 루디아가 이곳 출신이다(16:14). 두아디라 시민들은 한마디로 경제적인 부족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항구에는 돈이 충족하며 바다에서 사고가 많기 때문에 미신과 우상숭배가 심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하여 술집과 음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 문제, 곧 잘 먹고 잘 살고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이는 순간 사단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칭찬과 책망을 받은 교회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2:19).

여기에는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단어가 대거 등장한다.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했다면 정말 괜찮은 교회다. 두아디라교회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있었고, 섬김이 있었고, 게다가 고난을 당해도 인내할 줄 알았고,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고, 거기다 주님을 위해 쓰려고 사업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교회다.

이런 칭찬받을 일이 많은 두아디라교회가 받은 칭찬을 상쇄할 만한 일이 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2:20).

이세벨이란 여자가 문제의 원인이다. 이세벨은 당시 실존 인물의 이름이라기보다 행음과 우상숭배하게 한 인물에 대한 상징적인 자로 봐야 한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인데 극렬하게 우상을 섬긴 자로서 바알 선지자 450인을 기른 장본인이며,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대적한 여자다(왕상 18).

당시 두아디라에는 많은 상인조합이 있었고, 그런 조합의 모임에서는 회식이 있게 마련이었는데, 그런 회식은 대개 신전에서 행해졌다. 회식은 먼저 아폴로 신을 위해 제삿술을 부음으로써 시작되었고, 회식의 음식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런 과정에서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배당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상황에서 두아디라교회에 이세벨 같은 어떤 악한 여자가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거짓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회식에 참석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신전 창녀들과 음행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먹게 만들었다.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죄

그런데도 주님은 그 여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래도 그 여자가 회개하지 않자 주님은 그 여자를 침상에 던지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침상병상을 말하는데 주님께서 끝내 회개하지 않는 그 여자를 침상 곧 병상에 던지겠다고 하신 말씀은 병에 걸려 죽게 하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 여자와 더불어 음행한 자들에게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자녀들이 악한 질병에 걸려 죽게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3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라는 말씀에서 사망은 온역 곧 악질을 뜻한다.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분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주님을 속일 수 없고, 각자 행한 대로 대우하시는 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편 두아디라에 남아 있는 자들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된다는 말은 철장을 가지고 다스린다는 말과 함께 메시야의 통치 권세를 가리키며, 두아디라에 남아 있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동참하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 일곧 사랑하고 믿고 섬기고 인내함에 있어서 충성을 다하는 이들에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존귀하게 대우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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