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서”

등록날짜 [ 2019-01-30 07:29:16 ]

“진실하게 예배 드려라, 예배 시간 잘 지켜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악한 자 되지 말고 하나님께 상달하는 예배 드려서 아벨처럼 복 받으라는 말


요한1서 3장 8~12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유지케 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사랑이 식고 깨지면 어느 사회, 어느 집단, 어느 가정이든 분쟁이 생기고 그 속에서 불행이 자라다가 결국 감당 못 할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여 똑같은 효력이 발생하기에 진리요, 우리의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있을 때 영육 간의 모든 질서가 유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천지 만물을 주시고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도 임의로 먹게 하셨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절대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5~17). 이 말씀 속에는 ‘먹게 하는 자가 반드시 있다’는 마귀역사를 미리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마귀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원수를 이기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간교한 마귀는 뱀을 이용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했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했지 언제 ‘죽을까 하노라’ 했습니까? 이와 같이 마귀의 말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의 한 부분을 교묘하게 변질시켜서 우리를 믿음에서 무너뜨리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외에 딴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일점일획도 바꾸거나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마5:17~18).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 사랑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깨진 사랑의 질서
하와는 결국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남편인 아담도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신령한 질서는 무너졌고, 죄를 범한 인간에게는 정녕 죽음이 왔습니다. “죄는 두려움을 낳나니”라고 했기에 아담과 하와는 두려워서 하나님을 피해 나무숲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여 죽게 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제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내가 너보고 벗었음을 고하라 하더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지금 아담이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사죄하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이 만들어 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어요”라고 계속 핑계를 대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하나님은 답답한 심정으로 이번에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하와에게 묻습니다. 뱀에게 유혹당한 당사자이기에 “제가 마귀에게 속아서 저도 먹고 남편에게도 줘서 죄지어 죽게 됐으니 죄짓게 한 원흉(元兇)은 바로 저입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대답을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며 또 핑계를 댑니다. 죄를 지으면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형편과 사정을 변호하고 핑계 댄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할 때만 죄가 소멸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더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제사 상달에 실패한 가인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득남하였더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무슨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이 두 아들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기에 농사를 지은 최고 좋은 것으로 제물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기에 양을 잡아 피 흘려 그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가인이 농사를 지어 드린 제물은 아무리 좋은 것을 드려도 그 제사에는 죗값에 대한 죽음의 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아벨은 양을 잡아 피를 흘렸습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를 향해서 “보라.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설령 아벨이 수천 년 후 인류를 구원하시러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실 것을 몰랐을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감동을 줘서 “우리는 죄로 인해 이 양과 같이 죽어야 합니다” 하고 자기 죽음을 대신해서 양을 죽여 피와 기름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짐승의 죽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큰 예수의 피를 들고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양처럼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속죄함 받은 증거인 예수의 피를 볼 때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감동시키는 것은 아들 예수의 피 공로에 감사해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하나님께 상달하는 예배를 드려라
양의 피를 드린 아벨의 제사가 상달되었을 때, 가인은 분(忿)이 났습니다(창4:5).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내가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됐다면 선(善)을 행한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지켜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은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하는 예배를 드려서 아벨처럼 복 받으라는 말입니다.


가인의 분이 도를 넘더니, 결국 들에 나가서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여 암매장하고는 안 그런 척했습니다. 죄를 짓고서 안 지은 척해도 주님은 마음의 중심에 계시니 이미 다 아십니다. 아우를 죽인 가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고, “가인아, 네가 어디 있니?” 물으셨는데,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말대꾸합니다. 아우를 죽였으면,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을 속입니까? 마귀역사는 죄는 범하게 하고 회개는 절대 못 하게 합니다. 죄를 지어야 자기 것이 되고 지옥으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죄는 자존심을 세울 일이 아닙니다. 죄지어 놓고 자존심 찾다가 죄를 사함받을 기회를 놓쳐 그 죗값으로 지옥 가면 어쩌겠습니까? 자존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혼이 망하지 않도록 서로 불쌍히 여기면서 이 땅에서 매인 것은 이 땅에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회개는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끌려서 지옥 가지 않으려고 회개하자는 것인데, 왜 자존심 상해 하면서 시원하게 회개를 못 합니까?


우리 죄를 사해 주려고 하나님은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들은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저주받고 채찍에 맞고 피 쏟아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마음의 고통만큼이나, 주님의 십자가 고통의 아픔만큼이나 상한 심정을 내놓고 뼈아프게 가슴 치며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회개해야 합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자

죄를 지어 놓고 핑계 대고 속이려고 하는 것이 마귀역사라고 본문에 말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우리 인간이 지은 죄는 마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원작자는 마귀요, 인간의 죄는 아담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일은 인간을 죄짓게 해서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일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에도 “너희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마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죄지을 때 붙들고 사용하는 죄의 도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붙들고 죄의 도구로 쓰는 것은 누군가를 범죄케 만들어서 그 사람도 죽이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도구가 된 자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죄짓게 하는 데는 나도 사용되지 말고, 남도 사용되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불의의 병기가 되지 말아서 마귀의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담 이후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죄를 지어서 하나같이 다 지옥 가야 하는데, 예수께서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는 순간, 아담부터 범한 모든 자범죄는 회개하는 순간에 무효(無效)가 될 때 마귀의 일이 내게서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죄짓게 해서 지옥 보내는 일이 그 순간에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자마자, 사망의 세력을 쥐고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마귀는 영원한 심판을 받고 두 번 다시 벗어날 길이 없는 죄의 결박을 당해 버렸으니, 지금 마귀가 우리에게 죄짓게 하는 것은 불법(不法)입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내라”는 말씀은 “죄짓게 하는 불법자를 몰아내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하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라
“하나님께서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죄지을 수 없는 분이요, 그의 성품과 인격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하고, 아들 보내 죽게 하기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의 특징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씨’는 ‘종자(種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지라도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 복음 증거를 위해서, 우상 숭배를 거절하기 위해서, 짐승의 표를 거절하기 위해서, 목 베임을 당하며 순교하기까지 죄를 이겨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히12:4).


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느니라”(요일3:10)라고 했습니다. 의를 행치 않는 자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상달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열리지 않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진실하게 드려라” “예배 시간 잘 지켜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라” “미리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자.” 이렇게 목사가 애타게 말하는 이유는 예배에 실패하여 악한 자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예배를 의롭게 보실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닫아 놓고 가로막아 놓았던, 악한 마귀의 지배받게 했던 죄는 천만금을 드려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속죄받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벨이 짐승의 피를 들고 하나님을 뵙듯이, 오직 예수의 피로만 죄를 사해 하늘 문을 열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예수의 피가 없는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몸만 와서 앉아 있지 말고 하나님의 씨가 내 안에 거하고 그로 거듭난 자 되고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마귀의 자식이 아님을 확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썩어빠진 자존심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는 내가 형제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해야지 마음먹어도 밖에 나가면 체면상 말하지 못합니까? 그렇게 마음을 조작하는 것이 마귀역사입니다. 성령이 주신 처음 마음을 가지고 형제에게 담대하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그도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죄가 해결된 그 순간 더는 마귀역사가 존재하지 못하도록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때 떠나갈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의로울 때 나타납니다.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여, 간절히 비옵나니 가인같이 하지 마십시오. 그는 악한 자에 속하여 아우를 죽였습니다. 악한 자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알고, 사랑함으로써 그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는지 없는지를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원수라도 사랑해야 하나님의 씨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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