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예수와 함께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

등록날짜 [ 2019-03-19 20:28:30 ]

마태복음 16장 13~20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1986년 1월 개척 준비 예배 때부터 저의 모든 설교 내용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오직 예수, 오직 회개, 오직 예수 피, 오직 성령 충만, 오직 복음 전도’만 말해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 했으니 주님이 하신 일 오늘날 교회는 그대로 재현해야
교회가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말을 한다면 주님 역사하는 교회 아냐


예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일입니다. 이곳엔 거대한 이방신전이 있어 우상숭배가 만연했는데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人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는 말을 사용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하신 것은 우리 인간을 종처럼 섬기되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저주받고 매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인간의 허물과 죄악과 징계와 질병과 저주와 죽어서 지옥 갈 모든 것을 담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고난당하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 인자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침례 요한은 예수를 구세주로 소개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온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이적과 능력을 나타내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선지자입니다. 예수를 엘리야 같은 선지자라고 한 것은 예수를 엄청나게 대단하게 본 것입니다. 또 예레미야는 어떤 선지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눈물로 회개를 외치며 다녔던, 하나님 심정을 가장 많이 가진 선지자입니다. 나사렛의 목수요, 호적상 요셉의 아들인 예수를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 말한 것은 엄청나게 대접해 준 것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
이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베드로는 이 대답에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명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지배자, 절대자,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어 세운 자를 뜻합니다. 기름 부어 세운 자가 누구입니까? 선지자, 왕, 제사장입니다. 이 세 직책에는 하나님의 권위, 권세, 위엄이 따릅니다. 기름 부어 세운 선지자는 왕이나 백성이 잘못하면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할 죄를 깨달은 자들은 기름 부어 세운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은 제물로 잡은 짐승의 피를 받아 제사를 지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용서해 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받거나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께서 선지자와 같이 “회개하라!”고 해서 죄를 내놓으면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어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서 죄를 사해 주시므로 완벽하게 죄로 오는 저주와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셨으나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하고 심판하는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말에는 이런 기름 부은 자로서 사명을 다할 분이 예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죄가 없으니 회개하라고 할 수 있고,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었다가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죄가 없기에 그 분만이 내 죄를 담당하고 구원하실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라고 정확하게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참으로 깜짝 놀랄 만큼 위대한 고백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구세주로 아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게 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알게 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알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일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공개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해서 회개하여 예수를 만나게 하셔서 구원받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창조자, 절대자, 심판자이십니다. 그런 분이 나와 함께 계신다니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의 대답으로 이런 대단한 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인 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한 일입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교회는 예수를 말하는 곳
이와 같이 예수로 얻은 구원의 소리, 축복의 소리, 생명의 소리를 어디서 들었습니까?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계속 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다른 할 말이 없어서 설교시간마다 예수만 말하는 줄 압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를 말하는데 예수 외에 또 다른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철학자들을 말할까요? 그들은 세상이 인정하는 지혜는 말해 줄지 몰라도 우리의 구세주는 아닙니다.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실 구세주는 오직 예수입니다.


1986년 1월 5일 제가 집에서 개척 준비 예배를 드릴 때 했던 설교의 육필 원고가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모든 설교내용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오직 예수, 오직 회개, 오직 예수의 피, 오직 성령 충만, 오직 복음 전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의 절정이 예수이기에 저는 그 예수를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철학자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설교 중에 예수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은 예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합니다.


나를 위해 죽어 주시고 피 흘리신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아버지도 예수를 증거한다고 했고, 하나님의 아들도 예수를 증거하러 왔고 성령도 예수를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의 증거를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흡족한 대답을 들으신 예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주요, 그는 나의 구세주”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없다면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말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은 깨질 수 없는 반석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은 깨지지 않습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은 인자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요,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절대 깨지지 않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됩니다. 이 사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소멸되거나 가감되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나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또 에베소서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도하러 왔다, 귀신 쫓으러 왔다, 병 고치고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사함 받게 하여 구원케 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하고, 음부의 권세에서 승리하는 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돼서 태어났다고 성경에 기록됐습니다(마1:18~25). 30세가 되기까지 성령이 이끄시지 않으니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할 때 ‘그가 침례를 받는 순간 성령이 임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금식하시고, 성령에 이끌려 마귀와 큰 전쟁을 치르시고, 성령에 이끌려 공생애를 시작했고, 성령으로 권능을 행하셨습니다(눅4:14). 성령으로 하나님께서 권능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으시매 그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잡힌 자 눌린 자를 고치셨다고 했습니다(행10:38). 마태복음 12장 22절부터 32절까지 ‘그는 성령으로 귀신을 쫓았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9장 14절에 ‘성령으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그는 성령으로 부활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사십 일 계시다가 성령과 함께 승천하시고 자기와 함께 일하던 성령을 마가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보내는 순간, 그때부터 복음 증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하신 삶을 그대로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공생애를 사셨듯이, 오늘날 교회도 성령으로 잉태해서 태어나고 성령으로 공생애를 갖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했으니 주님이 하신 일을 오늘날 교회는 그대로 재현해야 합니다. 또 골로새서에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골 1:17~18). 따라서 교회는 머리가 몸을 움직이듯 주님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교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다른 말을 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역사하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 피의 공로로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천국 가게 하는 일이 교회의 사명
죄로 지옥 가는 사람 구하는 전도하는 일이 부끄럽다면 결박당하고 있다는 말
교회는 매인 것 푸는 곳…하나님 앞에 매인 것 있다면 회개로 풀기를 바라


매인 자를 풀어 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내가 천국 열쇠를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마귀·사단·귀신의 결박을 당해 매여 있는 사람은 하늘에도 매여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마귀의 결박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처럼 복음을 전해서 매인 자들을 풀어 줘야 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서 예루살렘이나 유대나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두려운 마음에 결박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쓰고 성령이 충만해서 권능을 받자 자신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보다 가서 그들을 죄에서 저주에서 풀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당합니다. 성령의 권능은 나를 죽이려는 자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죄에 매인 자를 풀어 줘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의 피의 공로를 전하면서 회개하여 죄사함받고 천국에 가자고 전해 줘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입으로는 위대한 고백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를 이루어 내게 구세주가 되신 것을 나만 기뻐하면 되겠습니까,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해 줘야 합니다. 내가 먼저 알았거든 저 사람 지옥 가지 않도록 전해 줘야 합니다. 마귀의 손아귀에서 풀어 줘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했으니 마귀에게서 풀어 주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예수 피가 넉넉히 네 죄를 해결하기에 회개하라!”고 전하는 것이 교회가 할 사명입니다.


성령을 모신 우리가 곧 교회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발견하여 예수로 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과거에는 마귀·사단·귀신이 지배하더니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장악하면 성령의 인격과 성품으로 나의 생각을 개조하십니다. 얼굴과 몸은 과거와 똑같은데 그 속의 심령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주받을 자가 축복받을 자로, 지옥 갈 자가 천국 갈 자로, 당장 죽어서 멸망할 자가 영생할 자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셨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그분이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라면 “주여, 결박에서 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과거의 나처럼 결박당한 자를 전도해서 풀어 주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작정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매인 죄에서 풀어져야 다른 사람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역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주님의 몸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공생애를 시작해서 전도하시며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듯이 교회도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내 안에 모신 자를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믿고 성령을 모신 자들은 각자가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돌리는 일이 죄와 악한 영의 손에서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하는 일이 부끄럽다면 결박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거침없이 예수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영혼을 살려내는 것을 가장 위대한 일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목숨을 초월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제자들이 자기 목숨을 초월해서 수많은 사람을 전도했듯이 우리도 목숨을 초월해서 전도하려고 한다면 체면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자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감사함으로 끝까지 순종해서 하나님 말씀의 의를 지키고 전도해서 수많은 영혼 구원하는 교회의 기능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제자들은 마가다락방에서 꽁꽁 묶여 매여서 한 발자국도 못 가더니, 성령이 임하시니 마가다락방을 박차고 자기들을 잡아 죽이려는 예루살렘 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들이 붙잡혀 당장 죽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죽인 자들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복음 증거하기 위하여,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제한 없이 사용하십니다.


성도여,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매인 것이 있다면 회개로 푸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매인 것을 푸는 곳이요, 그렇게 결박에서 자유를 얻은 자가 나가서 아직도 풀어지지 못해 죄로 지옥 가는 사람들을 풀어 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교회가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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