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27·下>] 악한 왕 아비야

등록날짜 [ 2026-06-11 19:56:09 ]

르호보암에 이어 왕위 오른 ‘아비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응답으로

북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성경에는 “부친의 모든 죄를 행했고

다윗의 마음 같지 않은 왕”으로 평가



<사진설명> 실와드 마을 전경. 벧엘에서 세겜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실와드’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북쪽에 있는 언덕을 ‘여사나’로 추정하고 있다. 남유다의 아비야왕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여사나를 빼앗았다. 여사나는 ‘족장들의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북이스라엘로 진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윤석전 목사: 유다 왕 아비야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과 전쟁을 벌여 여러 성읍을 빼앗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아비야가 차지한 성읍 중에 여사나(Jeshanah)도 있습니다. 여사나에 대해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여사나는 고고학적으로 ‘브르주 엘 이사네(Burj el-Isaneh)’라고 불립니다. 벧엘(Bethel)에서 세겜(Shechem)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실와드(Silwad)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북쪽에 있는 언덕을 여사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실와드가 팔레스타인 지역이기 때문에 발굴이 이뤄지지 못하고 지표 조사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족장들의 도로(Patriachs’ Road) 바로 옆에 있어서 족장들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사나로 추정하는 지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사나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대치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당시 군인들도 도로를 오가면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족장들의 길 바로 옆에 있던 여사나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사나는 남유다에서 북이스라엘로 곧바로 진군할 수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에게 요충지이던 여사나를 차지했다는 것이 전쟁의 승패에서 큰 의미가 있었을 듯합니다. 훗날 길이 열려서 여사나 지역을 연구하고 발굴할 날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아비야는 적은 군대를 가지고도 대승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비야를 악한 왕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15장에도 “그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왕상15:3)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왕의 기준이 다윗인데, 아비야가 다윗과 비교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열왕기상 15장 3절은 “아비야가 그 부친 르호보암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어진 4~5절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전합니다.


이로써 아비야가 악한 왕이었는데도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남유다가 승리하게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등불을 주셨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즉 다윗 이후 세워진 왕들이 무언가 특별하거나 왕으로서 우수한 게 없는데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연약한 인간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후대가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예루살렘을 존속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을 보며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큰 믿음이 됩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을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사건 외에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즉 밧세바 사건만 없었다면 다윗은 흠이 없는 왕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선왕의 흠을 드러내면서까지 기록된 말씀에 어떠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듯합니다.


▶기민석 교수: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을 극찬하는 듯하면서도, 다윗의 부끄러운 사건을 굳이 가져와 언급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윗에게 우리아의 일처럼 부끄러운 사건이 없었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다윗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며 다윗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죄를 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다윗이 저지른 부끄러운 사건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인간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또 인간이 완벽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흠이 있는 왕일지라도 하나님이 쓰셨기에 좋은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사진설명> 성전산 전경.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성전산 남쪽에 다윗성을 건축했다. 하나님은 다윗 이후의 왕들이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존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믿음이 된다.



▶윤석전 목사: 다윗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우리아 사건만 없었더라면 왕으로서, 사람으로서 흠 없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이나, 다윗이 하나님을 섬긴 모습을 바라볼 때 그의 머릿속에는 초지일관 하나님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목소리만 듣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 그의 흠이 되었습니다.


모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모세가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나와 가나안까지 갔더라면, 백성은 아마 모세를 하나님보다 더 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데스 므리바(Kadesh Meribah)에서 모세가 격동한 탓(민20:1~11)에 느보산(Mount Nebo)에서 생을 마치고 이후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은 흠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신이 완전하다고 착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내일 무슨 잘못을 저지를지 모르므로 오늘을 조심하면서 내일을 점검해야겠습니다.


열왕기상을 보면 다윗이 저지른 사건을 ‘우리아의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왜 밧세바 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아 사건이라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사람들은 보통 다윗이 밧세바와 저지른 사건을 더 많이 기억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특별한 관점을 담아 ‘우리아의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죄든 죄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밧세바의 사건은 밧세바와 다윗 쌍방 간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 같은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잘못을 저지른 후 곧바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는데, 죄에 죄를 더하고 자신의 잘못을 가려 보려고 왕에게 끝까지 충성한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아마도 다윗 시대에는 왕이 간음한 것도 큰 잘못이지만, 왕이 신하의 충의를 저버린 모습에 더 큰 분노를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도 그 점을 더욱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라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남유다를 승리하게 하셨는데도 아비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선왕보다 더 못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시면 겸손해야 하는데 교만해진 탓입니다. 내가 한 것 같고 내가 잘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갑절이 넘는 북이스라엘 군대를 물리쳤는데도 감사를 모르고 교만한 것이 패망의 선봉이 되고 말았습니다(잠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고, 환경이 좋다고 교만하다면 큰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겸손해야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 속에서 주님은 “네게 준 복을 기억하며 겸손하라”면서 뚜벅뚜벅 오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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