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수양관 행군 ‘워킹 흰돌산’ 체험 후기] 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등

등록날짜 [ 2012-08-14 09:48:31 ]

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유상규 (고등부 3학년)

처음 ‘워킹 흰돌산’ 얘기가 오고갔을 때만 해도 ‘45km쯤이야 뛰어 간다’는 심정이었고 일상을 잠시나마 탈출한다는 기쁨에 취해 있었다. 물과 당분을 꼭 준비하라는 당부도 별로 와 닿지 않아 물 2ℓ를 사들고 팥빙수를 먹으면서 “좋아, 난 당분은 미리 채워 놓겠어” 하며 자신만만했다.

새벽 5시 30분. 목양센터 1층에서 온몸에 선크림을 바르고, 밀짚모자를 눌러썼다. 허리가 아픈 관계로 친구에게 물을 맡기고 매우 가벼운 걸음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4km 지점에서 약간의 간식을 먹을 때만 해도 수건에 물을 적셔 목에 두르며 “좋아, 벌써  지점이야” 하며 웃고 떠들었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심정을 느끼며 걷게 될 거야”라고 윤대곤 목사님께서 말씀하셔도 특별히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10km, 20km... 점점 걷는 거리가 늘어갈 때마다 발이 무겁고 다리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25km가 넘어가자 나 자신과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점심을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았지만, 그 긴 거리를 걷는 데에는 밥과 물도 힘이 나게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육체가 고통스러웠고, 그럴수록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입에서는 방언 기도가 절로 나오고,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걸으신 골고다 언덕길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육체는 벌써 한계에 다다랐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계속 예수님이 가신 골고다 길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신 채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맨발로 거친 바닥을 걸으셨는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 잘 포장된 도로를 신발을 신고 걸으면서도 힘들어하는지, 왜 그렇게 속으로 불평불만 하는지, 항상 합리화하던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앞장서 가시는 윤대곤 목사님만 보고서 계속 걸었다. 목자를 따라가는 양처럼 말없이 걸었다. 목사님 말고는 길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무조건 목사님만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이 좌로 가면 좌로 가고, 우로 가면 우로 가고, 산으로 가면 산으로 가고, 차도로 가면 차도록 가고.... 그저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양처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예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속 걷다 보니 흰돌산이 가까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저수지를 돌아서 산만 넘으면 되었다. 그런데 날이 너무 어두워져서 아쉽지만 행군을 중단하고 교회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육신이 얼마나 지쳤는지 버스에 앉자마자 잠에 빠졌다. 교회에 도착하자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시간 낭비를 고생하면서 사서 하느냐?”고 했지만, 이번 행군을 하고 나니 나름대로 깨달은 점이 참 많다.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참석해서 완주하고 싶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생겨

강태훈 (중등부 2학년)

처음 1/12 지점을 지날 때 “와! 금방이구나, 이렇게 12번 하면 도착이구나” 하면서 자만하고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시간은 길어졌다. 1/12에서 1/8이 되는 시간이 길고, 1/8에서 1/6이 되는 시간은 더 길었다. 평지를 걸으며 그늘이 절실할 때 휴식과 그늘이 얼마나 감사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절반을 지났을 때, 포기할 기회가 있었다. 정말 그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새삼 유혹과 미혹, 간사한 육신의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낙오하는 게 뭐 그리 못난 거냐?’며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주 쪽을 선택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솔직히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돌아서 역으로 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음수대가 나왔다. 정말 금과 같은 휴식이었다. 광야에서 모세가 반석을 쳐 물을 마시고 쉴 때가 이 같지 않았을까. 작은 것에 감사하고 큰 것을 바라지 않는 소탈해진 내 모습을 바라보며 ‘워킹 흰돌산의 목적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대략 24km쯤 지날 때부터 더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지열이 이글이글 올라올 때는 광야를 걷는 심정이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힘든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워킹 흰돌산을 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성경 일부 같았다.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어린 양들, 그리고 양 떼를 인도하는 목자인 목사님. 산을 오르는데 주님의 인도를 방해하는 마귀역사도 있었다. 산에 군사시설이 있어서 반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불만이 올라왔다.  순간 불평불만 하면 지는 것으로 생각하며 가만히 입을 다물고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한 것도 예수님의 도우심 같다. 불평이 시작되면 계속 연쇄를 거듭해 점점 패망으로 들어갔을 테니 말이다. 이점이 나름 뿌듯하다. 그래서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돌아서 고속도로를 걷다가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그늘과 올록볼록 재미있는 길. 평소 같으면 산 걷는다고 힘들어서 싫어했겠지만 나무 그늘과 산 냄새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산그늘의 소박한 행복이 그렇게도 소중할 수 없었다. 논 옆의 작은 길도 걸었다. 창조물의 신비로움을 보며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거리에서 흰돌산수양관까지 완주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쉬며 교회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치 성령이 충만한 성도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다리는데 차가 도착했다. 비록 흰돌산수양관까지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완주할 기회가 오면 그 영광을 주님께만 올려 드리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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