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가정생활에 모범이 되는 그리스도인
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윤리와 예절 (2)

등록날짜 [ 2010-07-04 20:54:32 ]

윤리.도덕에 맞는 바른 섬김과 실천 필요
나로 인해 가정에 기쁨과 희망이 넘쳐야

우리 믿음의 청년들은 가정생활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나를 통해 상쾌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집에서 아버지를 맞이하는 자세, 어머니를 맞이하는 자세, 동생이나 오빠 혹은 형을 맞이하는 자세가 항상 그들로 하여금 상쾌하게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가정의 윤활유가 되어야 하지 나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잠자다가 교회에 간다며 덮고 잔 이불도 안 개고 나간다면 누가 그를 좋아하겠습니까. 이런 것 때문에 핍박이 오고, 교회에도 누(累)가 됩니다. 교회생활은 잘한다고 하면서 왜 가정에서는 모범이 되지 못하는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다
가정생활에서 호칭(呼稱) 문제도 심각합니다. 요즘 세대는 부모나 자녀 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하구별도 못 한 채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친근함이 있어 좋아 보이는 것 같지만, 자식은 부모를 부모로서 깍듯이 대우해 드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부모님은 부모님 위치에 올려놔 드려야 하고, 자식은 자식의 위치에서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위치가 없어져 버린 지 오래됐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도 부모의 위치를 바르게 해드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하겠습니까. 오늘부터라도 당장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깍듯하게 대우해 보십시오. 아마 굉장히 좋아하실 것이며, 대화부터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돌려놔 드리면 결국 그 유익이 자식에게로 돌아옵니다. 부모의 위치를 제대로 올려놔 드릴 때 형제간의 위치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위치가 바로 있지 못하면 형제간의 위치도 바로 서지 못합니다. 그러니 불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이제 오늘부터 부모의 위치를 확실히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 믿지 말라는 것 외에는 죽으라면 죽기까지 그 말씀에 순종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부모의 위치를 확실히 해 드리는 것 중 하나는 절대 부모에게는 반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존칭을 사용하십시오.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아서 불편하고 어색해도 바꾸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평생에 누구에게 존칭을 쓰겠습니까? 기왕이면 부모에게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생명을 바쳐 키워준 부모에게 존칭을 써서 대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가장 존경할 분이 가정 안에서는 누구입니까? 그런데 그 부모를 그렇게 존경해 봤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발을 동동 구르며 책임지려 하실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 부모를 함부로 대하면 되겠습니까?

부모의 위치를 올려 드리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해도 사용하는 언어를 친구에게 하듯 하고, 행동을 형이나 아우에게 하듯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부모의 위치를 올려 드린 것이 되겠습니까? 사용하는 언어로 봐서는 도대체 누가 부모인지 누가 자식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부모에게 존칭어를 쓰십시오. 그렇게 될 때 부모의 위치도 확고부동해지고 그만큼 여러분도 인정받게 됩니다. 남들이 언어와 행동을 잘못 사용한다고 왜 나도 같이 잘못 사용해야 합니까?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자식의 위치로 돌려놔야지 상전 대접하듯 잘해주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에게 가르칠 것은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옛날에는 철없는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길 때, 손자의 아비는 그저 안절부절못합니다. 할아버지는 “오냐, 오냐” 하지만 나중에 아들은 손자를 데리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혼쭐을 냅니다. 위계질서를 분명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때리면 “아유 어머니, 왜 남의 자식 때려요” 하며 오히려 자기 부모를 향해 자기 자식을 왜 때리느냐고 따집니다.

윤리.도덕을 뛰어넘는 하나님 말씀
가정에서 분명한 상하구분으로 청년들이 자기 위치를 잘 지키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만이라도 이 윤리를 잘 지키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위치를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태까지 못 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느냐고 계면쩍어할 것 없습니다. 평생 반말하며 지내온 동기동창인 남녀도 만나서 결혼하면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고 당장에 존칭을 씁니다. 부부간에도 이처럼 하루아침에 존칭을 사용해 바꾸어 말하는데, 하물며 자기 부모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왜 어렵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이제부터 부모에게 존칭어를 쓰기 바랍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는 것처럼, 불신자인 부모님이 여러분을 볼 때 ‘예수 믿더니 무엇인가 달라졌구나’ 하는 것이 확실히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그런 자식을 보면서 ‘교회는 이런 윤리.도덕도 가르치는 곳이구나’ 하고 교회를 새롭게 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윤리나 도덕 차원보다 더 높여서 다뤄져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윤리.도덕은 완벽하게 터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하는 자가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면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이러한 면들을 잘 숙지하여서 가정에 도 온 맘을 다해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1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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