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조각목이 되어야 하나님이 쓰신다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17)

등록날짜 [ 2010-12-15 11:06:49 ]

삶이 사막처럼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예수께 의지하며 인생의 짐 내려놔야


싯딤나무(조각목)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 조각목
조각목은 사막에서 모래와 바람에 많이 얻어맞으며 자라는 나무라서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조각목은 아주 단단하고 억센 악마디가 많습니다. 이 악마디 때문에 뿌리에서 만들어진 진액을 원활하게 공급받는 일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는 일도 조각목처럼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일 때가 잦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애매한 고난을 겪기도 하고, 은연중에 고립당하기도 합니다. 어디를 봐도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어 난감해질 때도 있습니다. 결국, 예수께 가는 것밖에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늘 환영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도 조각목처럼 악마디가 너무 많아 스스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고립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의심이 많은 성품 때문에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무슨 권면을 해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주려 해도 세상에서 너무 많이 얻어맞고 속아서 그런지 교회에 와서도 ‘그것이 사실일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의심 때문에 생명의 말씀이라는 진액을 순수하게 공급받지 못합니다. 얼마나 완악한지 모릅니다. 내 속에 있는 완악함이 악마디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고립해 성장을 방해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 사는 조각목
또 조각목은 항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삽니다. 사막에서는 모래산이 만들어질 만큼 큰 회오리바람이 불기 때문에 언제 모래더미에 묻힐지 모릅니다. 바싹 메마른 모래땅이라 언제 말라죽을지 모르고, 바람이 모질게 불어 몸에 난 가시들이 서로 찔러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지속하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이처럼 회오리바람에 순식간에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아무도 도와줄 자 없이 죽음의 두려움 속에 홀로 사는 것이 조각목의 운명입니다.

우리 인간도 조각목처럼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상황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 의해 죽기를 무서워하며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2:14~15).

인간이 당하는 이런 상황은 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형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런 죄와 마귀를 멸하시고 인간을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막의 조각목처럼 고립된 채 죽음의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구원받은 자, 즉 내 안에 주님을 모신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으로 이 땅에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고(요14:16~18), 구원받은 자들을 위해 천사를 보내어 지키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히1:14). 또 이렇게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있다가 목숨이 다하는 날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갈 영혼의 때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조각목임을 알아야 주님께 돌아온다
이처럼 조각목과 같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예수를 간절히 찾게 됩니다. 자신이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못나고 어리석어 스스로 살 수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 죽음의 위협과 공포를 느껴본 사람만이 살려는 본능으로 주님을 찾아옵니다.

탕자가 아비 집을 떠나서 온갖 무시, 멸시, 천대 다 받고 인간으로서는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기억하고 돌아온 것처럼, 자신이 조각목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쓰디쓴 고난의 잔을 마신 자만이 진정한 감사를 압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감사를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조각목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람은 절대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예수밖에 없음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조각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이 조각목과 같은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조각목을 잘라서 성소를 지으라고 하신 일이 오늘날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과 고통에 처할 때마다 ‘아하, 주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구나. 주님이 나를 찾는 목소리구나’ 하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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