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최후의 날을 위해 깨어 있으라

등록날짜 [ 2010-12-29 15:07:55 ]

베드로후서 3장 8~13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종말과 심판은 만세 전부터 정하신 뜻
거룩한 성도로 그날까지 믿음 지켜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입니다. 또 씨를 뿌리시고 거두시는 심판주시요,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시작하신 것은 영원히 책임을 지고 결말을 보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시작하셨고, 시작하신 그분이 또한 거두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1: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

씨를 뿌려 시작한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타작마당으로 농사를 마감하듯이, 우리 하나님도 세상을 시작하셨기에 세상을 통해서 최후에 심판도 하십니다. 바로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모아 곳간에, 쭉정이는 모아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내던지는 심판을 하시는 분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세상과 육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인생도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죽을 때가 있다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심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한 날로부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하여, 주님이 거두고자 하시는 뜻과 일치했는가에 대하여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신분이 무엇이냐가 아닙니다. 있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타작하시는 최후의 심판주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자기 영혼에게 중요합니다(계20:12).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서 산 삶의 행위에 따라 심판 받기 때문입니다.

해는 떴다가 지고, 꽃과 잎도 피었다가 지며, 바람은 불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전1:5~6). 이와 같이 사람도 태어나면 반드시 언젠가는 죽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또한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가 죽는 것은 창조자가 정하신 법칙입니다. 우리 조상의 모든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창조자의 말씀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사람에게는 육신의 몸도 있고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고전15:44). 한 알의 씨가 열매를 얻기 위하여 땅속에서 썩어 없어지듯이 우리의 육체도 자기 영혼을 위하여 죽기까지 일해야 합니다. 한 알의 씨앗이 농부를 위하여 열매를 내려고 기꺼이 썩어서 죽기까지 열심히 일하듯이, 우리의 생애도 창조자인 주님을 위하여 신령한 열매를 내도록 죽기까지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의 씨앗처럼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한 알의 씨앗이 썩어 가을에 그 열매가 알곡이냐 쭉정이냐에 따라 곳간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심판을 받듯이, 우리의 영혼도 반드시 심판을 받을 날이 옵니다. 사람의 육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늙었다는 말은 썩었다는 얘기요, 나이 먹었다는 말은 나이 먹은 만큼 썩었다는 말입니다. 썩어가는 육체에는 영원한 희망이 없습니다. 썩어가는 육체의 희망은 오직 신령한 몸을 위해 사는 것, 창조자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영혼의 때를 위한 축복이요, 기업인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태어날 때가 있었기에 사라질 때가 있는 것처럼 정하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사라질 날이 옵니다. 그때에 모든 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때를 위해 깨어 있어야
하나님이 영원 전에 하신 약속이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것처럼, 세상이 사라진다는 종말의 약속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본문의 말씀처럼 그토록 오랫동안 비추던 태양도 빛을 잃고, 하늘도 큰 소리로 떠나가며 사라질 것입니다(벧후3:10).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초림하심은 세상 종말의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종말을 위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한 심판주로 오셨습니다(요3:16~18). 성령의 역사는 세상의 종말에 이루어질 사역이요, 종말의 선포를 알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혼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끝내려 하시는 종말의 징조입니다(마24:8~1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모든 일의 끝이 되니(마24:29-31), 우리는 종말의 징조가 눈앞에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는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17~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아무나 구원을 얻는 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적 의미에서 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졌기 때문에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경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로부터 구원받은 경험,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경험, 믿음에 있는 경험자로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후의 날을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영혼의 때를 위하여 시간을 아끼면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좇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실망하게 해 드려서는 안 되며, 영원히 후회하지 않도록 세월을 아껴써야 합니다. 하루가 천 년 같은 고통의 구렁에 자기를 내던져서는 안 됩니다. 최후의 심판을 위한 주의 강림은 도적같이 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항상 깨어 있는 자가 되어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철저하게 점검합시다. 십일조, 첫 열매, 주정헌금, 각종 헌금, 그리고 주를 위한 충성, 받은 직분에 대하여 대신, 대인 관계에 흠이 없도록 잘 정리합시다. 어떤 것도 하루가 천 년 같은 고통의 심판을 받을 만한 것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잠시 당하는 환난과 고통은 장차 올 영광과 바꿀 수 없습니다. 잠깐 육신의 안일과 만족을 위하여 하루가 천 년 같은 고통을 영원히 당할 것입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일을 속히 완성하되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도적같이 그날이 닥쳐온 다음에는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과 육신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육신은 사랑해도 낡아지고 썩어질 것들뿐입니다. 해 아래에 어디 하나라도 새것이 있습니까? 오직 영원한 영혼의 때를 살아가게 될 자기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최후의 때에 영원한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자기 영혼을 위하여 자기 생애를 도모하는 자만이 그날에 빛나는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종말과 심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정하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거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날이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 되도록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22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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