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0)] 복음을 실어나르는 수레가 되어야 한다

등록날짜 [ 2012-07-24 13:47:58 ]

모든 직분은 오직 전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칠 때 능력도 나타나

복음의 일꾼인 직분자는 무엇보다 영혼 살리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교사 직분을 맡은 자는 맡은 아이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교회학교 운영도 영혼을 살리는 프로그램으로 해야 합니다. 복음의 일꾼인 교사는 모든 일정을 영혼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런데 여름성경학교를 아이들 육신이 즐거운 각종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도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성대하게 끝났어!” 하고 스스로 위안 삼지는 않았습니까?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교사든 모든 직분은 복음의 일꾼입니다. 교회 직분자가 복음의 일꾼노릇만 철저히 한다면,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남녀전도회 등 교회 어느 부서든지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은 예수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직분자는 그 일을 하려고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모두 복음을 운반하는 수레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생사화복을 지닌 자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복음 증거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믿으면 그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겠습니까? 우리가 전해주면 이웃 수많은 영혼이 살고, 전해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은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가졌습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하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화(禍)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웃 영혼이 죽고, 내게는 화가 미칩니다. 이것이 사(死)와 화(禍)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이웃 영혼이 살고, 내게는 복이 옵니다. 이것이 생(生)과 복(福)입니다. 이처럼 생사 화복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엄청난 복음의 일꾼이 됐으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복음 전하는 일꾼에게는 능력 따른다
복음의 일꾼에게는 직분과 함께 능력도 따릅니다. 복음의 일꾼인 전도자에게는 꼭 능력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병든 자에게 기도해줘서 현장에서 고쳐주면 ‘예수는 죽은 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전능한 분이구나. 이방 다른 종교와는 다르구나!’ 하고 예수께로 오지 않겠습니까?

기독교에 능력이 살아 있는 것은 기독교만이 생명의 종교임을 확증합니다. 복음의 일꾼에게는 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여, 내가 복음의 일꾼이 되기 원하오니 내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내가 예수를 말할 때 저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게 도와주옵소서. 저 영혼이 망하게 되었사오니 내가 저들을 살리게 하옵소서!’ 하고 벌떡 일어나 가서 전하십시오. 그리고 영혼을 살리려는 열심,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려는 열심을 지닌 복음의 일꾼이 되십시오. 그러면 능력은 저절로 나타납니다.

초대교인이 복음의 일꾼들이 되니 누구랄 것도 없이 능력이 제한 없이 나타났습니다. 전도하는 현장에서 죽을지라도 자기 목숨을 걸고 수많은 이웃 영혼을 살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날 교회 직분자인 당신에게 능력이 없다면, 복음의 일꾼이 안 돼서 그렇습니다. 병든 자에게는 병을 고쳐주어야 복음입니다. 고난 겪는 자에게는 고난을 해결해주어야 복음입니다. 문제를 가진 자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인 직분자는 항상 능력 있는 복음을 들고 나갑니다.

예수의 오해를 풀어주는 직분자
이 세상 최고의 복음은 주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내 질병을 고쳐주시려고 채찍에 맞으신 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려고 저주받은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공로로 저주에서 해방된 것이 복음입니다. 그의 피 공로로 죽음에서, 지옥에서 산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들고 나가면 이웃의 영혼을 예수의 피로 구원해주기 전에 먼저 그들의 질병부터 치료받습니다. 저주부터 물러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마귀 사단 귀신부터 떠나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일꾼에게 이 권리를 주면서 ‘내 이름을 네게 주노니 들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당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삼았는데 왜 전하지 않습니까?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초대교인들을 보십시오. 복음의 일꾼들에게 따르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왜 그렇게 복음의 일꾼 노릇을 못 합니까? 내가 사랑하는 주님, 나를 구원하신 주님, 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주님을 저들의 오해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우리 주님을 오해하고 있다’고 설득하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을 오해하는 자들에게 “예수는 공자, 맹자, 석가 같은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의 구세주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현대의학이 저버린 불치병에 걸렸을지라도 능히 고치시는 분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을 만나십시오. 오늘 그분을 환영만 하십시오. 그분은 분명히 당신을 만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해보십시오. 그들이 그분을 만나는 순간 질병에서,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고 ‘기독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받아들이면 바로 그분이 일하시는구나!’ 하고 오해를 풀고 예수 믿고 구원 받지 않겠습니까? 예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예수에 대한 누명을 벗겨주고,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직분자가 모두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분자로 삼았습니다. 이 일을 하라고 복음의 일꾼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복음을 전하십시오.<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9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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