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1)] 복음의 일꾼에게는 능력이 따른다

등록날짜 [ 2012-07-31 09:29:16 ]

믿는 자라면 누구나 손을 얹을 때 나을 권리 주셔
자기 신념을 버리고 말씀대로 사는 신앙 소유해야

직분자는 모두 복음의 일꾼으로 세운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일꾼인 사도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이 선동한 무리가 돌로 치자 쓰러졌습니다.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성 밖에 끌어다 버렸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바울은 이튿날 더베라는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행14:19~21).
 
이것이 복음의 일꾼이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게 능력을 주시면 복음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복음의 일꾼이 되면 능력은 저절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능력에 제한이 없습니다. 안식일에 병든 자가 교회에 왔다고 합시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은 겉으로는 살려는 마음이 있지만, 속으로는 체념하고 낙담해 있습니다. 속으로 ‘나는 죽는다’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죽는다는 체념을 뿌리째 뽑아서 ‘나는 산다’로 바꿔야 삽니다. 이것은 신념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려고 전능하신 주님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또 예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도할 권리도 주셨습니다. 믿는 자가 믿는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권리도 주셨습니다. 이 엄청난 권리가 세상 어떤 값비싼 약보다 확실한 치유를 보장합니다. 그리고 이 권리는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거저 주셨습니다.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나누자
육체가 병들어 아픈 것은 안식이 아닙니다. 건강한 것이 안식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병을 고쳐서 안식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마음이 안식하고, 죄 사함 받아 죽어 가는 영혼이 살아서 안식합니다. 주일 예배 때마다 이 세 가지 안식이 언제나 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일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안식이 없습니다. ‘아! 고추밭에서 고추 따야 하는데....’ 생각이 엉뚱한 것에 사로잡혔으니 안식이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고 아무리 주님이 말씀하셨어도 믿어야 맡깁니다. 믿지 못하니까 맡기지 못합니다. 고추밭도 못 맡기고, 토마토밭도 못 맡기고, 자기 질병도 못 맡깁니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질병에서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빚진 자는 그 빚을 갚으면 빚쟁이에게 잡힐까 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병든 사람도 주님이 이천 년 전에 그가 아파야 할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털고 일어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영수증으로 “내 이름을 네게 주노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치료받을 영수증이 있습니다. “내 이름을 네게 주노니 또 다시 질병이 들어오거든 손을 얹어라. 그러면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갚아 줬으니 그 영수증을 보는 순간 악한 질병은 떠나가게 될 것이라” 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권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 값을 지불하셨기에 우리가 누릴 당연한 권리입니다.

내게 이루어진 복음의 권리를 챙겨라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죽어 주었습니다. 만약 대신 죽은 그 죽음이 인정된다면, 나는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합법적인 이치로 받는 것입니다. 이방종교는 정성을 들이고, 방생(放生)하고,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곳에 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사후에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내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죽으시고 합법적으로 죗값을 갚아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성립됩니다. 이제부터 아무도 우리가 받은 구원을 손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애원하는 것도 아니고, 사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내 몫으로 챙기는 권리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일꾼이 디아코노스, 복음의 일꾼입니다. 기독교가 애원하고, 사정하고, 정성을 들여서 구원 받습니까? 애원하고, 사정하고, 정성 들여서 병 고침을 받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복잡한 것이 아니고 단순한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전하라는데 왜 전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만인에게 나눠 주는 직분자
문방구 주인에게 외상으로 문구를 가져가고 갚지 못하면 무척 괴롭습니다. 문방구 앞으로 떳떳하게 지나다니지 못하고 빙 둘러 다니다가 문방구 주인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혼쭐이 납니다. 외상값 때문에 자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외상값을 갚아 주셔서 그 영수증을 내게 주시면 그날로 자유롭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예수 이름이라는 영수증을 주셨으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질병에 ‘주님이 나 위해 채찍에 맞으셨다’는 예수의 이름을 보이고, 끝까지 주장해서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기어이 예수 이름의 승리를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형 에서의 칼날이 야곱의 목을 겨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장자권을 잃은 분노가 오랜 세월 원한의 칼을 갈게 한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변에서 잠시 후에 날이 밝아 형의 칼날이 자기 목에 닿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축복하소서! 주여! 나를 축복하소서!” 밤새 천사와 씨름하여 주님의 축복을 얻어내는 순간에 야곱의 목을 치려고 한 에서는 마음이 변하여 야곱의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조여 오는 저주받은 질병이 내 목숨을 끊기 전에 예수 이름을 붙들고 기어이 성공하는 승리자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을 경험하는 자가 복음을 가진 자요, 이것을 만인에게 줄 수 있는 자가 디아코노스, 복음의 일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하라고 당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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