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뢰 (요한복음 3:16-18)
인간이 당할 멸망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신뢰와 함께 감사와 감격 넘쳐야

등록날짜 [ 2008-06-17 10:53:37 ]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본질이 사랑이요, 성품이 사랑이요, 그분의 섭리와 계획도 모두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는 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이 영원한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며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어 죄 아래서 영원히 멸망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인간의 멸망을 담당하고 죽게 하셨으니, 이것은 천지 창조보다 큰 사건이요, 우주 안에서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사건입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 지구 안에 있는 인간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피할 수 없듯이, 영원히 크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부인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숨 쉬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만드신 공기를 마시고 사는 것이요, 그가 마시는 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육체가 건강한 것도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사는 것이니,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피할 수 없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집사, illustpark@yahoo.co.kr)


인간을 말씀의 법대로 구원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공의(公義)만 가지고 심판하신다면 인간은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무제한(無制限) 무조건(無條件)으로 사랑하셨으니, 그 증거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무조건 사랑하시되 죄는 심판하시고 의는 영원히 보전하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것은 영원히 멸망해야 할 인간의 죄를 그대로 둔 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는 법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값인 사망을 모두 갚아주시고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자시요, 법의 집행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죄 값을 갚고 해결하는 순간 우리는 의로워졌으니, 우리는 멸망할 죄의 밑천이 끝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의 심판을 받을 밑천도 끝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되 인간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인간의 죄값을 예수가 대신 갚았으니 믿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의의 법칙 아래 큰 죄든 작은 죄든 하나님의 아들이 그 죄로 인한 사망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 값을 다 갚으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어떠한 죄라고 해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초월하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모든 죄를 넉넉히 갚아 버리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인격적인 태도

하나님께서 인간이 담당해야 할 죽음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게 하셨으니, 인간이 당할 멸망에서 건져 주시고 구원하신 그 큰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신뢰와 함께 감사와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멸망에서 살았다는 기쁨이 넘쳐야 하고,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영생을 얻었다는 환희로 충만해야 합니다. 또한 주를 위해 살리라는 인격적인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감격 속에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신인관계의 절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멸망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께 끝없는 영광을 돌리며 그 은혜 안에서 강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멸망은 과학이 감당할 수 없고, 문명이 감당할 수 없고, 어떤 교육이 감당할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와서 죽으신 죽으심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토록 큰 사랑을 통해 만물 안에서 육체가 살고 예수의 피 공로로 내 영혼이 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배은망덕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 크나큰 잘못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충만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식으로 아는 자가 되지 말고 그 사랑을 소유하고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과 믿음은 사랑 속에서 믿음의 신뢰를 이루는 조화로운 의식이요, 인격적인 예배요, 최상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랑과 믿음은 사랑을 베푸신 분과 사랑받은 자의 인격적인 조화요, 인격적인 생각의 결과요, 복된 삶의 실천이요, 영원히 함께하는 최상의 기업인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자의 조화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 같지만 사랑을 받는 자가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으로써 주는 자에게는 기쁨이요, 받는 자에게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실 때 독생자의 죽음을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죽어야 할 고통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들의 절규를 뿌리치고 독생자를 죽여서 나를 살리는 일에 기꺼이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이 큰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는 일에 힘이 든다고 말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들을 죽이신 아버지가 힘들고, 인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아들이 힘들지, 믿고 영생하는 일이 왜 힘듭니까? 힘이 들고 고단할수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올수록,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사랑받은 힘으로 이겨야 합니다. 사랑은 믿음이요, 신뢰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 안에서 굳건하고, 믿음 안에서 의심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인간에게 주신 사랑과 말씀의 실천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막9:23).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들과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 자체가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사랑과 믿음과 은혜의 조화인 것입니다(요15:9-14).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과 조화를 이룰 수 없으니, 이것은 주시려는 주님과 받으려는 인간과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열심히 일하고 소리 높여 기도하고 사람 보기에 아무리 모범이 되고 굉장한 믿음이 있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여 주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 의와 외식일 뿐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도 제한받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불가능의 고뇌가 역사할 때에는 오히려 더없이 불타며 사모하는 것입니다(약5:13-18). 그러므로 참되고 신령한 사랑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어떠한 상황의 제한을 받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도 그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없이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시다. 신부가 신랑을 사랑함같이, 사랑하는 신랑에게 다 맡기고 자유합시다! 할렐루야!


■ 기도합시다
주여!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말로만 아는 자가 아니라 그 사랑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13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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