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영혼 구원의 사랑

등록날짜 [ 2016-05-03 13:01:37 ]

이웃 향한 전도는 신앙 양심의 절대적 발로이니
그리스도인이라면 영혼 살리는 일에 최선 다해야

요한복음 3장 16~21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요, 사랑은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사랑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명령이 있고, 생명이 있으니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멸망할 자를 살려 내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향한 사랑
하나님은 인류를 모두 사랑하시며, 하나님 사랑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인간을 영육 간에 살리시고 고치시고 영원히 함께하는 것입니다(요3:16). 세상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또 영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불가능을 해결해 주겠다는 말씀이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해 달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있는 것도 없게 하며, 내 속에 질병이 있어도 하나님은 없게 할 수 있고, 내가 건강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건강하게 하실 수 있으며, 내가 멸망할 자라도 하나님은 영생하게 할 수 있으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이 있어도 해결할 수 있으십니다.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부으며 모든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우리는 믿음으로 무제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육 간에 산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요, 그가 자기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로 산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육체는 하나님 은혜로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영혼은 영원히 멸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사랑의 현현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를 찾아와 자기 딸이 죽어 가고 있으니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니, 그 사랑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회당장의 딸을 고쳐 주려고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막5:22~24).

그때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예수를 만나기 원했습니다. 아무리 의원에게 가서 약을 먹어도 고치지 못하고 고통받던 중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고침받기 원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에워싸여 가고 있어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직접 고쳐 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다만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 하는 믿음을 품고 많은 사람의 틈에서 예수의 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그러자 열두 해를 지겹도록 고통스럽게 따라다니던 혈루증의 고통이 쑥 빠져나가고 자유를 얻었습니다(막5:25~29).

그 사실을 아시고 예수께서 멈추시고는 자기 몸에 손을 댄 자를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이 에워싸 밀치고 있으니 손을 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알고 찾으신 것입니다. 여인은 속일 수 없다는 걸 알고 두려워하고 떨며 자신이라고 고백했습니다(막5:30~33). 왜 두려워 떨었을까요? 자신의 행동이 죄인 것 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막5:3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을 알지 못하여 그 사랑의 절정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의무 수준을 넘어서 사랑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절대적 신앙 양심의 발로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일, 영혼 구원

기독교인의 영혼 구원 사랑은 천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에게만 준 권리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실천을 영혼 구원으로 나타냅니다. 우리가 구제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쳐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세상 지식을 얻는 학업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명예를 얻는 일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교회를 짓고 예배드리는 일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위로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아래로 멸망하는 영혼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즉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 사업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도, 천지 어떤 피조물에게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 사업은 천지간에 제일 큰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혼 구원이라는 기업을 주신 것은 천사보다 한 영혼이 크기에 최고로 위대한 기업을 자기 자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도는 이방 종교와 같이 사람을 많이 모아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니요, 오직 죄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살리려는 것입니다. 세상 정욕은 욕구 충족의 이기적인 사랑을 배출합니다. 이 같은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욕구 충족에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사랑은 자기 목숨을 다하여 영혼을 살립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다양할지라도 인정이나 애정이나 감정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정욕이요, 육체라고 하는 한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랑은 자기 육체와 혈육을 위한 것이요, 자기 육체와 혈육을 사랑하기 위해서 물질과 명예와 부귀영화를 애타게 구하지만 자기 육체만 계속해서 낡아져 갈 뿐입니다.

세상 수많은 무덤이 부귀영화를 구하다 간 흔적입니다. 인간의 목숨은 돈보다 부귀영화보다 월등하게 천하에서 제일 큰 것이로되 인간의 목숨을 투자하여 목숨보다 더 작은 것, 자기 목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위하여 값진 자기 목숨을 투자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소치요, 최후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야 맙니다(눅16:19~31, 눅12:13~2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5~26).

기독교인의 자기 삶, 곧 자기 목숨의 투자는 인간의 목숨보다 영원히 큰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설교하는 목사라도 영혼을 살리겠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요, 지금에 이곳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을 찾아 모으는 노예가 아닙니다. 오직 영혼을 살리는 생명에 자기 삶, 자기 목숨을 투자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잔인하게 죽으신 희생은 인간의 죽음을 대신하신 일이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와 같이 사도 바울과 제자들의 전도와 같이 멸망하는 영혼을 살립시다.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건져 내어 영원히 행복한 저 천국으로 함께 갑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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