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해달 가죽으로 만든 성막 넷째 덮개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32)

등록날짜 [ 2011-04-06 09:35:20 ]

성막 가장 바깥 볼품없는 가죽으로 덮어
그 안에 감추어진 보물, 눈치 채지 못해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 하시고 성막 윗부분을 앙장 둘과 덮개 둘 모두 네 겹으로 덮으라고 하셨습니다. 맨 아래는 천사무늬를 수놓아 짠 앙장, 그다음에는 염소 털로 보온성 있게 짠 앙장, 그 위에는 붉게 물들인 수양 가죽 덮개, 마지막으로 해달 가죽으로 웃덮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출26:1~14).

이번 호에는 하나님께서 왜 거룩한 성막의 맨 마지막 덮개를 해달 가죽으로 만들라고 하셨는지, 해달 가죽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한글 성경에는 해달 가죽으로 번역했으나, 당시 상황과 물증으로 고증(考證)하면 물개 가죽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나 혼돈을 피하고자 성경대로 해달 가죽으로 설명합니다.

해달 가죽은 예수의 인성(人性) 상징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출26:14).
성막 제일 바깥 덮개를 가죽이 매우 질기고 단단한 해달 가죽으로 만든 것은 사막의 모래와 먼지, 흙과 열기, 건조한 바람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내릴까 말까 한 비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해달 가죽은 색깔이 거무스름한 것이 매우 볼품이 없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기구들은 모두 금으로 장식하였고, 성막을 ‘황금의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나게 값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거무스름한 해달 가죽으로 덮어놓은 성막은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그 속에 그런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다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합니다. 오직 성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유대민족만이 그 성막을 흠모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실 때 나사렛 촌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살았으니 얼마나 천박한 저변의 사람으로 보였겠습니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던 것도 보잘것없는 나사렛 출신이라는 측면에서 예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찮은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달 가죽으로 만든 성막 마지막 덮개는 곧 참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그를 나사렛 촌 동네에서 태어난 목수 아들로만 보고 그 속에 인류 구원의 엄청난 계획과 영원한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나의 구세주, 하늘나라의 주인,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 심판주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성막의 겉모습인 해달 가죽만 보고 그 속에 있는 각종 값진 금장식 기구들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사야가 기록한 대로 예수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습니다(사53:2~3). 출생도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겉으로 보이는 외모로 판단했기에 그를 신성 모독죄로 끌어다가 가야바 안뜰에서 채찍질하고 힐난하였습니다. 빌라도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가게 하였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가 목숨이 끊어지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영혼이 떠나는 순간, 천지가 흔들리고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마27:45~54).


<사진설명> 성막 넷째 덮개는 겉보기에 볼품이 없다. 따라서 겉만 보아서는 성막 속 감춰진 보물을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성도도 이 세상에서는 볼품없다
예수로 거듭난 성도들도 겉보기에는 해달 가죽처럼 별 볼 일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도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가 계시고, 성령님이 계십니다. 예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으며,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지구상 누구도 받지 못할 최고 관심을 받으며 하늘나라가 들썩이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겉으로는 그런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보잘것없는 해달 가죽처럼 보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우리는 해달 가죽 같은 보잘것없는 출신이요, 문벌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볼품없으나 속에는 금은보화보다 귀한 예수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내 안에 있는 하늘나라를 이렇게 감추지 못하고 공개한다면 도둑이 다 훔쳐갔을 것입니다. 돈 많은 재벌들이 다 사가고 우리 몫은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내 안에 감춰져 있기에 훔쳐갈 수도, 사갈 수도 없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내가 끄집어 내버리지 않는 한 영원합니다.

그런데 내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세상 사람은 몰라도 마귀는 압니다. 내 안에 있는 하늘나라가 곧 귀신을 쫓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늘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이루어졌다”고 주님은 마태복음 12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귀는 내 안에 이루어진 하늘나라를 가장 탐내고 시기하고 끝없이 그 나라를 파괴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지키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원수를 이길 능력을 주셨습니다. 겉으로 볼 때 해달 가죽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하늘나라를 이루어, 성막을 덮는 해달 가죽 덮개처럼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3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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