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38)] 번제단은 희생(犧牲)의 제단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38)

등록날짜 [ 2011-05-24 14:38:45 ]

십자가에서 모든 것 버리시고 죽으신 예수처럼
말씀과 뜻에 순종할 부분만 남기고 모두 버려야

번제단(燔祭壇)에서 번제를 드릴 때는 먼저 제사 드리는 자가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희생(犧牲) 제물에 안수하고 자기 손으로 짐승을 잡습니다.


<사진설명> 그리스도인은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처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삶을 십자가 앞에 내놓아야 한다.

죽인 짐승의 피는 제사장이 받아 번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그런 다음에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할 일은 자기가 직접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입니다(레1:6). 제물의 ‘가죽을 벗긴다’는 것은 죄인인 자신의 겉모습을 완전히 제거한다, 옛사람을 철저히 벗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곧 죄가 가득한 위선과 거짓, 외식, 가식이라는 가죽을 벗겨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됩니다.

각(脚)을 뜨는 것은 짐승을 어설프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 형태가 남아 있지 않게 완전히 조각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 드리는 자는 제물을 칼로 각 뜨듯, 자신이 그렇게 사정없이 갈가리 찢어질 만큼 완전히 죽어야 하는 자임을 자각하며 그런 아픈 심정을 품고 짐승을 잡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했으니(히4:12),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의 칼로 각을 뜨듯 나를 사정없이 죽이는,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죄인의 모습으로 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각을 뜬 제물을 제단 위 나무에 벌려 올려놓습니다(레1:12). 그리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깨끗이 씻습니다(레1:13). 즉 미움, 시기, 질투, 혈기, 불만, 불평 등, 마음속의 죄까지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라는 희생의 제단
이처럼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번제의 과정은 죄의 습성을 지닌 옛사람을 완전히 제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제물을 일절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번제단은 나를 완전히 죽이는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실 만큼 내가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어 주님이 나를 마음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내놓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 죄를 끄집어내고, 나를 완전히 내려놓으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라는 제단에서 자기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는 희생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의 능력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세를 다 버리고 생축(生畜)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희생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질병에서,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죽어 없어져야만 참 희생이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상징하는 번제단은 희생의 제단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난 우리도 역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희생의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해 물질도, 명예도, 체면도, 육신도,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아무리 내가 가죽을 벗겨 내고 각을 뜰 정도로 극심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를 위해서라면 “아멘, 그리하시옵소서!” 하고 묵묵히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번제단의 희생제물과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보여주신 십자가의 희생을 본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믿음의 기준을 정해놓고, ‘이렇게 믿으면 되겠지! 이 정도 하면 되겠지!’ 하고 자위하며 믿음을 제한합니다.
우리는 구약시대 성막의 번제단을 통해 어떻게 제물을 준비하여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희생 제사의 모형대로 자신을 드리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했습니다(갈2:20).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부르면 달려가던 내가 죽고, 죄짓기를 사모하던 내가 죽고, 육신의 정욕을 불태우려고 하는 내가 죽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삶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반항하던 나는 이제 죽고 오직 하나님이 움직일 ‘나’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실 ‘나’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주님, 다른 목소리를 들을 귀가 없고, 다른 것을 바라볼 눈도 없습니다. 다른 것을 말할 입술도 없고 다른 것을 사고할 생각도 없습니다. 오직 백 프로 당신만이 장악할 ‘나’만 남았고 나머지는 싹 다 간 곳 없이 죽었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롬14:8).
그러므로 주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오직 말씀에 순종할 ‘나’만 남아 있어야 ‘희생의 제단’이 내 안에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안 이루어지고는 성막의 다음 순서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성막으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번제단에서 양을 잡아 피를 흘리면서 구원주 예수가 오실 것을 기다렸으나,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좇아 희생의 제단이 되어 재림하시는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최후에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내가 죽어 희생하는 번제단 같은 십자가를 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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