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52)] 쾌락을 좇는 삶은 헛되고 무익하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2)

등록날짜 [ 2014-12-24 16:36:11 ]

참된 행복은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는 것
영원한 영혼의 때를 위해 자기 삶을 만들어 가야

솔로몬이 쓴 것으로 알려진 전도서는 시작부터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포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1).

솔로몬은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 본 이스라엘의 왕이요, 전무후무한 지혜를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솔로몬 왕이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기록한 책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특히 전도서 2장에는 육체의 쾌락을 쫓는 자의 허무함을 잘 기록해 놓았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사도 바울이 경계한 대로 말세를 당한 오늘날의 성도에게도 전도서 말씀은 큰 은혜가 됩니다.

쾌락의 끝에서 오는 괴로움
솔로몬 왕은 전도서 2장 1절에서도 세상 낙을 누려 보았으나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한마디로, 작정하고 인생을 즐겁게 살아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어 2장 3절부터는 육신의 쾌락을 좇던 자신을 고백합니다.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먼저, 술로 자기 육신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까 궁리했습니다. 술은 쾌락과 즐거움을 억지로 만들어 주는 도구입니다. 현실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만들어 보려고 몸부림치는 수단 중의 하나가 술입니다.

우리는 마땅한 일로 즐거워해야지 술을 먹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마약 중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 마약 중독에 빠질까요? 현실은 불안 초조하며 괴로울 뿐이데, 마약을 하면 환각상태로 쾌락을 맛보며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약성분은 한 번 몸에 들어가면 끊기가 어려워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손을 떨며 마약을 구하러 다닙니다. 마약 기운이 있을 때는 환각상태라 기분이 좋지만 마약 기운이 떨어지면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괴롭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단 현상입니다.

쾌락은 즐길 때는 좋지만 이후에 찾아오는 괴로움은 상상을 초월하게 인간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내던집니다. 세상 쾌락이 끝난 다음에 오는 괴로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세상 쾌락과 정욕으로 살다가 죽어서 가는 지옥은 이 땅에서 당하는 괴로움과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쾌락의 극치에 있다가 그 쾌락이 물러갈 때 괴로움과 고통도 극치에 이른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술이나 마약 같은 허무한 것들, 최후에 나를 비참하게 망하게 하는 것을 쫓지 말아야 합니다.

쾌락을 쫓아 산 삶
그다음에도 전도서 기자는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라며 쾌락을 계속 쫓아다녔다고 기록했습니다. 전도서 2장 4~8절은 솔로몬 왕이 누린 쾌락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 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솔로몬 왕은 이러한 육체의 쾌락을 얻는 데에는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쾌락이라는 쾌락은 다 즐겼으며, 자기 마음이 바라고 즐거운 것은 죄든 저주든 상관없이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고는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쾌락을 위해서 한 모든 수고를 최고 기쁨으로 여겼으며, 얻은 쾌락이 이 모든 수고로 주어진 대가나 보상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쾌락의 헛되고 무익함
그러나 전도서 2장 11절에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자기 손으로 행한 모든 일과 또 그 일을 이루려고 애쓴 모든 수고를 돌이켜보니 다 헛되고 허무하다,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하다는 고백입니다.

이 세상 쾌락은 해 아래서 이렇게 무익합니다. 무익한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정신없는 사람입니다. 쾌락은 돈과 인생과 가치관을 낭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육신의 때를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쾌락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낭비입니다.

낭비하지 않고는 쾌락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 결과 역시 다 망가지고, 깨어지고, 박살나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니 쾌락을 쫓는 일이 얼마나 정신 빠진 짓입니까?

참된 행복은 낭비하지 않고 건설하는 것입니다. 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것입니다. 내 것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 행복입니다. 세상 낙은 이만큼 헛됩니다.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임을 깨달았을 때, 그렇게 살던 지난날이 이가 갈리는 원수 같은 사건이 되어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쾌락을 위해 철딱서니 없이 값진 재물을 내던진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았음을 깨닫고 통곡하며 후회하지만 더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런 후회의 날이 오지 않도록 우리는 육신의 쾌락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일을 더 즐거워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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