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한국 교회 전도기 ⑥] 생활 곳곳에서 문화 차이를 느끼다

등록날짜 [ 2010-12-15 11:08:00 ]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 윤리를 이해하며
생활에 적응해가나 영적 추수는 어려워


캡션-부인과 소녀를 위한 특별반에서 가르치는 펙윈 선교사 부인

내가 지난 두 해 동안 살펴본바, 한국에는 성문법이 없다. ‘풍속’과 ‘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의 경우도 ‘체면’이 주도한다. ‘체면’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마7:12)과는 정반대다. 데이비드 해럼의 말에 따르면, 체면은 ‘남이 너희에게 대접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되, 엄격하게 하라’는 것이다.

예의에 관한 동.서양의 차이
‘체면’은 동양 윤리의 처음이자 끝이다. ‘하리키리’(할복자살)를 하는 사무라이의 관습에 ‘체면’을 보태면 일본 철학을 이해하게 된다. 자기에게 맡긴 중대사를 해내지 못하면 ‘체면’, 즉 일본인의 명예를 잃은 것이고, 그것은 자살함으로써만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이 일본이 자랑하는 용기의 본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용기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체면’을 중심 규율로 삼는 종교다. 지금까지 내가 써 온 글을 읽으면 이 관습이라는 산이 얼마나 가파르고 높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인들은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서양에서 온 백인은 큰 혼동을 겪는다. 서양에서는 말을 솔직하게 하되, 자기 의사를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예의 바르게 표현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빙 둘러 말하는’ 습관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며, ‘체면’을 손상할까 봐 항상 말을 조심하며, 예의를 갖춰 남의 ‘체면’을 깎고 자기 체면을 살리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유교도는 스승의 이런 기술을 아주 존경하고 탄복한다.

공자와 고위 관리 사이에 누구 ‘체면’을 더 높이고 존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큰 외교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문제는 관리가 그 위대한 현자의 ‘체면’을 높여 주는 것으로 끝났다. 관리는 공자에게 매우 정중한 영접과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떠날 때는 평소 같았으면 대문까지 배웅을 받고 아마 어느 정도 거리까지 호위를 받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공자는 그 관료의 ‘체면’을 훼손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접견실에서 작별인사를 한 다음 곧 현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자신이 그 관료를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능멸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아주 가볍게 그의 체면을 훼손했다. 서양인이었으면 공자의 행위를 오해하고서, 그 위대한 사람이 자기 집을 떠나는 손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칭찬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구원 사역
이듬해 봄에 나는 서울을 떠나 소래로 돌아갔다. 여름 용품을 담은 바구니와 친구가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화초 씨앗들을 조금 가져갔고, 서울에 사는 미국인 집 정원에서 얻은 각종 유실수와 화초 삽목(揷木)들도 가져갔다.

소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집터로 물색해 둔 곳 옆에 아주 기름진 밭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작은 집을 지은 다음, 열두 대가 넘는 소달구지를 이용하여 3㎞나 떨어진 들판에서 흙을 퍼 나른 뒤, 그것을 문 앞에 약 90㎝ 높이로 쌓아올렸다. 그 둘레에 돌담을 쌓으니 아주 이상적인 꽃밭이 되었다. 곧장 꽃씨를 심었고,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고 흡족해했다.

밭을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서양인 선생이 겉옷을 벗고 노동하는 모습을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동양 사상에 따르면 선생이나 선비는 노동해서는 안 되었다. 서양 계급 제도가 그 폐쇄적인 사상을 이교 문화에서 빌려 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꽃밭의 풍성함과는 달리 영적인 밭은 그렇지 못했다. 안제경 선생 부인만 빼놓고는 그 밭에는 영적 생명이 없었다. 주일에는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왔으나, 여느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출석이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인 듯했다. 사탄은 아주 많은 사람을 종교적으로 만듦으로써 우롱한 뒤 그들을 멸망으로 꾀어낸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교회에는 나오나 예수를 진심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만유이신 분-그리스도-자체다. 나는 고독을 참지 못하였다. 근처에 한적하고 아름다운 숲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깊은 슬픔을 주께 아뢰었고, 이 아름다운 장소를 사탄에게서 빼앗아 주님께 바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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