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18)] 하와이에서 한국 최초 남녀공학 실시
유교 관념에 물든 한국인에게는 획기적인 조치

등록날짜 [ 2013-05-28 14:24:08 ]

이승만의 아버지는 방랑객이었다. 명산대천을 찾아 전국을 누비다가, 몇 달 만에 나귀 목에 달아놓은 방울 소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부친의 피를 이어받은 이승만 역시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물론 독립운동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오가기도 했지만, 이승만 본인도 워낙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방랑벽은 리더로서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세계를 발로 누빈 만큼 견문이 넓어지고, 현장을 확인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교회 핍박』 집필을 마친 이승만은 특유의 활동력을 발동하여, 하와이 여러 섬을 구석구석 순방했다. 무려 45일이 걸렸으니 그야말로 샅샅이 뒤진 것이다. 본인의 활동 무대가 될 하와이를 자세히 살피는 동시에 4000여 명이나 되는 교민의 생활상도 직접 목격했다.

이승만은 여행을 겸해서 업무 파악도 마쳤다. 하와이 순방 도중, 학교도 못 다니고 중국인이나 본토인에게 팔려가 한국말도 모르는 숱한 소녀들을 만났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는 딱한 처지에 있는 소녀들도 많았다. 이승만은 여행을 마치고 호놀룰루로 돌아오다가 사정이 어려운 소녀 여섯 명을 데리고 왔다.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하와이에서 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일찍이 이승만은 감옥에서 교육자의 역량을 발휘했다. 감옥에서 쓴 『미국흥학신법』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 밖에도 또 한 가지 부연할 것이 있는데, 동방의 아직 개명되지 못한 여러 나라를 위하여 이제 논급하려고 한다. 생각건대 배움이란 사람이 반드시 다해야 할 직분이며 거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반드시 총명하지 못하고, 총명하지 못하면 성현의 글을 읽고 올바른 도리를 깨우치지 못한다. 그러면 아마도 그 폐단은 우둔해지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하게 될 것이다.”


<사진설명> 이승만 박사가 1918년에 설립한 남녀공학 <한인 중앙학원>. 이승만 원장은 왼쪽 끝에 흰옷을 입고 서 있다. 

여기에서 처음 여성 교육에 관한 선구적인 생각이 등장한다. 이승만은 이 생각을 하와이에서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한인 중앙학원에서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교육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것은 남녀공학 제도였다.

이승만이 한인 중앙학원 원장에 취임하자마자 여학생 19명이 모여들어 공부하겠다고 청해 왔던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은 그들이 지낼 기숙사를 마련하고 입학시켰다. 이로써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남녀공학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관념에 깊이 물든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급진적인 조치로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일부 미국인까지도 상당히 반대했다고 한다. 이승만은 이러한 반대에도 남녀공학 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승만의 선구적인 조치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남녀공학 제도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교포 사회도 대환영을 표했다. 남녀공학 제도 시행은 한국 교육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역사적으로도 이승만은 한국인 최초로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다. 평생 이승만을 따라다니는 ‘최초’는 하와이에서도 붙여졌다.

한인 중앙학원에서는 영어, 성경, 한글, 한문, 한국 역사를 가르쳤고, 민족혼과 독립 정신 고취에 주력했다. 한인 중앙학원 기숙사 학생이었던 박에스더의 회고담이다.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비로소 애국심에 눈을 떴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두 울었어요.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려서 이승만 박사가 어떤 분인지 자세히는 몰랐어요. 그저 어른들이 애국자라고 해서 존경했을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말을 잘 듣지 않거나 화가 나면 양 볼을 부풀려서 훅훅 하고 불어 대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그분이 옥중에서 고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생긴 버릇이라고 하더군요.”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3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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