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19)] 하와이에서 기독교 신앙과 독립사상 고취
태평양 비전과 교민

등록날짜 [ 2013-06-05 17:16:40 ]

언론·교육·선교를 통해 장기적 독립운동 지속해


<사진 설명> 1905년 4월 30일 설립된 하와이 에바농장교회와 한인 이민자들.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 반드시 수반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해의 기틀을 마련하는 교육, 의무감을 높이는 윤리적 종교, 목표를 달성하려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교육 활동을 벌이며 이러한 민주주의론을 체득한 듯하다. 교육, 종교, 행동은 이승만이 행한 교육 지침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승만은 기숙사 여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것을 모체로 1914년 한인기독학교를 설립했다. 교사진은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강의는 주로 영어로 진행했다.

교과 과정으로 하와이 공립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인재를 길러 내고자 했고 성경 공부를 강조했다. 이승만은 채플 시간에 설교를 맡아 한국인은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인기독학교는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저로 줄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큰 걱정 없이 다니게 했다. 수업료는 무료였고 기숙사비는 실비 정도만 받았다.

하지만 가난해서 기숙사비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면 그것도 면제해 주었다. 훗날 대통령에 있으며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시행한 교육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은 하와이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인 것이었다.

한인기독학교는 양우찬, 박관두, 김찰제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이들은 한국과 하와이 교민 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하와이대학 역사학 교수 최영호는 1985년 9월에 할머니 한 분과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할머니는 하와이 한인기독학교에서 기숙하며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5학년 정도였을 때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백인 가정에 가서 일했다.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소로 가던 중,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가까스로 정류장까지 걸어갔지만 날씨가 사납고 버스도 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겁을 먹었다. 이렇게 공포에 질려 몇 시간 동안 폭풍우와 암흑 속에 갇혔는데, 난데없이 이승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왔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어린 여학생은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그 학생이 보이지 않자, 이승만은 사방에 연락하여 학생이 있는 곳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래도 알 수 없자 8km나 되는 버스 길을 따라 폭우 속을 걸어서 찾아왔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승만이 아주 따뜻하고 세심하게 학생들을 돌보아 주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1898년 한 해 동안 신문 세 개를 창간하는 신기록을 수립할 정도로 뛰어난 언론인이었던 이승만은 하와이에서도 언론 활동에 주력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1913년 9월 20일 『태평양잡지』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17년간 발간했고 1930년 『태평양주보』로 바뀌었다. 주필로 활약한 이승만은 교민에게 기독교 신앙과 애국 독립사상을 심어주는 일에 주력했다.

잡지 이름으로 ‘태평양’을 고집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하와이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이기도 했지만, 이승만은 무엇보다 태평양을 한민족이 살아가야 할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우리나라가 더는 대륙 끝자락에 있는 조그만 나라가 아니라 해양 진출을 향한 거점이자 지정학적 힘을 지닌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잡지명에 표출했다. 오늘날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품었던 꿈이 실현된 모습이다.

하와이는 유인도(有人島) 여덟 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승만은 하와이 팔도(八島)를 조선 팔도(八道)에 비유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 여덟 섬에 한인이 아니 가 있는 곳이 없으니 과연 조선 팔도라. 섬 도(島)와 길 도(道)가 뜻이 다르나 음은 일반이니, 이것을 과연 우리의 남조선이라 이를 만한지라. 장차 이 속에서 대 조선을 만들어낼 기초가 잡히기를 바랄지니, 하나님이 10년 전에 이리로 한인을 인도하신 것이 무심한 일이 아니 되기를 기약하겠도다.”

이승만은 교육, 언론 이외에 기독교 전도에 주력했다. 언론과 교육과 선교를 통하여 조국 광복을 향해 장기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이승만이 품은 하와이 비전이었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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