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26)] 카이로 선언, 독립에 대한 미심쩍은 약속
한국 독립 외교

등록날짜 [ 2013-07-30 17:07:50 ]

약소국이 희생해 강대국이 이익을 얻는 정책 비방


<사진설명> 1945년 3월 국제연합 창립총회에 참석하려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워싱턴 대표단 일행. 그러나 국제연합은 한국대표단이 좌우로 분열했다는 이유로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앞줄 가운데가 이승만. 

이승만은 한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며 미국 지도자들에게 한국이 독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전파했다. 그 결과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1943년에 작성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과 관련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루스벨트 대통령, 장제스 총통, 처칠 수상은 각자의 군사, 외교 고문과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회의를 마치고 일반적 성명을 발표한다. 각 군사 사절은 일본국에 대한 장래의 군사 행동을 협정했다... 연합국의 목적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개시한 이후에 일본국이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 일부 도서를 일본국에서 박탈한다. 아울러 만주, 대만, 팽호도 같이 일본국이 청국에 도취한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한다.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본국을 몰아낸다. 3대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조선이 독립하게 한다.”

카이로 선언은 열강들이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소식을 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열광했다. 하지만 이 선언에는 위험한 함정이 있었다. 일반 대중은 물론 독립운동 지도자들도 함정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는 사실만을 반겼다. 해방 직후까지도 카이로 선언이 지닌 실체를 알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이승만만이 함정을 알아보았다. 사실 그는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낸 일등 공로자였다. 이병주는 이승만이 한국의 독립과 관련한 조항을 카이로 선언에 삽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미국에 소장한 문서들을 증거로 언급했다.

이승만은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는 공로에 도취하지 않고, 오히려 선언문 내용을 냉정히 살폈다. 그리고 선언 속에 들어 있는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라는 어구 때문에 독립이 무한정 지연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승만은 카이로 선언에 기록한 한국 관련 내용이 ‘즉시 독립’이 아니라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독립’이라는 점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라는 어구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달라고 미 국무부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미 국무부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승만이 보낸 서한을 묵살했다.

이승만은 줄기차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승만이 보인 노력에 서서히 호응하는 미국 내 지도자들도 나타났다. 영부인인 엘레노어 루스벨트는 이승만을 직접 만나서 이승만이 쓴 편지를 남편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1945년 3월 12일, 신디케이트 칼럼에 그녀는 이승만을 만난 소감을 썼다.

“나는 이전에 이승만 박사를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만난 그의 얼굴은 숭고한 정신으로 빛났고, 그의 온화한 표정에서 그의 동포들이 오랜 세월 발휘했을 인내심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1945년 이승만은 <한국사정>이라는 팸플릿을 발행하여, 임시 정부를 승인하지 않는 미국을 공격했다.

“소련을 아시아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한국과 관련한 소련의 요구가 명확해질 때까지 임시 정부 승인을 유보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은 약소국이 독립하는 일을 방해해 강대국 지원을 받으려는 어리석은 정책이거나, 강력한 우방이 만족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어떤 외교 정책도 추진하지 못하는 미국의 소심함을 드러낸다. 어떠한 경우든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이승만은 계속해서 미국 고위 관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약소국 망명 정부 인물에게 “어리석다” “소심하다” “음모를 감췄다”는 평가를 끈질기게 들어야 하는 강대국 관료들의 심경이 오죽 불편했겠는가.

이승만이 희망과 동시에 불안으로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갑자기 광복이 도래했다. 미국 시각으로 1945년 8월 14일 밤 11시,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라디오 임시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이승만의 곁에 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이 감격한 모습을 회고했다.

“그분은 임시 뉴스를 듣다 말고 벌떡 일어나셨어요, ‘이봐, 일본이 항복했어, 우린 귀국하는 거야.’ 그분은 제 손목을 꽉 붙잡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분으로서는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지요. 그저 눈물을 글썽이면서 제 손만 꽉 잡고 계셨습니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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