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믿음의 사람들] 침례 요한처럼 짧고 강렬한 삶을 살다 주님 품으로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1813~1843)

등록날짜 [ 2013-11-05 11:38:30 ]

서른 살, 짧은 생애를 오직 영혼 구원에만 쏟아부어
‘맥체인 성경읽기표’ 만들어 오늘날까지 널리 활용

<사진설명>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Cheyne)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1813년 5월 21일에 태어났다. 신실한 기독교 신앙을 기반에 둔 법률가 집안에서 5형제 중 막내였다. 맥체인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4세 무렵, 앓던 병이 낫자마자 그리스어를 배웠고, 곧 문장을 쓸 실력까지 갖췄다. 맥체인은 14세(1827년)에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했다.

사춘기를 자유분방하게 보낸 맥체인은 큰 시련을 경험했다. 1831년에 큰형 데이비드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특히 맥체인에게 하나님과 관계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다던 형의 죽음은 어린 맥체인에게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맥체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하려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깊이 회개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까지 살아온 생활을 완전히 바꿨다. 형이 소망하던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에든버러 대학 신학부에 들어갔다.

1835년 7월 1일 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어 11월에는 스텔링 부근 라버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맥체인은 온전히 주님을 의지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매 주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적 자양분을 성도와 나누었다. 맥체인은 일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예수만을 전한다.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기도한다.”

1836년 11월, 맥체인은 던디(Dundee)에 있는 세인트피터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맥체인 홀로 담당 지역 내 성도 4000명을 통괄해야 하는 막중한 직분을 맡았다. 맥체인은 당시 던디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 도시는 미신이 판을 쳤고, 막대한 돈을 거래하며 각종 폐습이 횡행했다.”

맥체인은 던디에 부임할 때 던디가 바뀌리라고 선포했다.

“주님은 이 분화구와 같은 죄악의 도시를 푸르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던디는 주님께 복 받는 장소로 거듭납니다!”

맥체인은 죄를 인식하는 감각과 죄책감이 사라진 강퍅한 사람들에게 “영적 죽음과 타락은 자신의 영혼을 지옥에 빠뜨린다”고 외쳤다. 맥체인 목사는 늘 죄와 심판을 전하며 설교했다. 영혼을 구원하려는 끝없는 열정이 맥체인을 사로잡았다.

“나는 아침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할까?’라는 생각으로 잠을 깬다. 내가 기도할 때나 산책할 때 엄습하는 생각은 ‘우리 교회 성도가 천국이나 지옥 둘 중 한 곳에 가겠구나’라는 고민이었다”고 일기에 남겼다.

맥체인은 영혼을 향한 열정만큼 경건한 생활로 삶을 풍성하게 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속에 기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맡기는 경건을 추구했다.

맥체인 목사는 성경읽기표를 만들어 언제나 전 성도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은혜 받게 했다. 매일 성경 네 장을 읽어야 하는 배열표는 매년 구약 한 번, 신약과 시편은 두 번씩 읽는 분량을 담았다. 이와 같은 ‘맥체인 성경읽기표’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애용한다.

맥체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 언제나 양심을 청결하게 하고,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인격이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닮아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인류가 구원받는 일에 최고로 마음을 쏟으면, 영혼의 때에 가장 충만한 보상을 얻는다고 확신한다.”

맥체인이 신실하게 살고 성령께 인도받는 사역을 하자 몇몇 사역자가 맥체인을 시기했다.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맥체인은 넓은 아량을 한결같이 유지하여 그들을 대했다.

또 맥체인 목사는 육체가 연약해 괴로워했다. 맥체인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사역에 늘 과중하게 몰두했다. 한번은 강단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종종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릴 때는 몇 시간 정도 누워 있어야 평정을 찾았다.

1839년, 맥체인 목사가 스코틀랜드 전역으로 순회 설교를 하려고 출타 중일 때, 스물네 살인 윌리엄 번스 목사에게 잠시 목회 사역을 맡겼다. 번스 목사는 뜨거운 기도생활을 하였고 열정적으로 설교했다. 번스 목사는 설교 말씀으로 사람들 마음을 관통하며 주님께 인도했다.

맥체인 목사가 눈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면 번스 목사는 그 토양 위에 물을 주며 열매를 거뒀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게 했다. 맥체인 목사가 돌아온 후, 번스 목사는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맥체인의 7년간 사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맥체인 목사는 시간과 심판을 언급하며 강한 설교 말씀을 전했다.

“나는 오래 살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 앞에 앉은 여러분들도 모두 죽음을 맞습니다. 여러분이 죽고 나서는 회개, 중생, 은혜라는 기회가 절대 없습니다. 지금이 은혜 받고 거듭날 시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맥체인은 1843년 2월에 북서쪽 스코틀랜드 지역을 다니며 설교 말씀을 27번 전했다. 3월 11일 주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설교했다. 이것이 마지막 설교였고, 돌아오는 화요일에 몸이 극심하게 아팠으나 결혼식을 주례했다. 그날 밤 맥체인은 열이 올라 쓰러졌다. 3월 25일 주일 아침, 맥체인은 마치 축복 기도하듯이 손을 들었으며 영원한 안식처로 서서히 들어갔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6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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