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주님을 만났어요”
방송 제작으로 바쁜 생활 중에 교회로 인도

등록날짜 [ 2006-04-03 13:31:32 ]

은혜받은 후 기도하는 부모님께 너무 감사

내 나이 서른두 살, 잘나가는 방송국 제작팀에 속하여 시청률 높은 인기절정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며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승승장구 하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만남이 있었다. 난 그 만남으로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그래서 그 행복을 전하고 싶어 날마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내가 32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주님과의 만남은 내 생애의 최고의 축복이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
나는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아버지는 예수의 사랑을 전하신다며 사업으로 번 돈을 몽땅 노숙자와 거지들에게 쓰셨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있는 고급 미제 오리털 침낭이며 어머니가 사주신 새 가죽점퍼도 모두 아낌없이 거지에게 주시는 분이었다.
예수 믿으면 천대가 복을 받는다는데 복은커녕 거지들 때문에 어머니와 자주 싸우고 자식들보다 거지들을 우선하는 아버지를 보며 사춘기를 겪어야 했다. 내 마음은 온통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다녔던 교회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시들해졌고 모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렸으며 진실된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의 기도
세상으로 점점 빠져가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슬을 밟으며 꼬박 2시간동안 눈물로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고,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알면서도 나는 줄곧 외면해왔다. 내 삶이 불신앙 가운데서 생활하는데도 하는 일마다 형통한걸 보면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은 FD, AD, PD를 5~6년 이상 걸려서 되는데 나는 어머니의 기도로 SBS 방송 제작팀에 27살 나이로 당당히 뽑히게 되었고, ‘호기심 천국’ ‘좋은 친구들’ ‘가요대상’ 등 다수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1년도에는 선배들과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을 했다. 요즘 방송은 거의 70-80%가 외주제작이고 나머지는 자체 제작이므로 방송사에서 30-40군데 프로덕션에 외주를 주고 경쟁을 시켜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완전 무한경쟁 속의 틈바구니에서 나에겐 쉴 틈 없이 일이 쏟아졌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두세 달 쉬는 게 다반사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실력이 없는 내겐 일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성취감 때문에 술 마시는 횟수가 늘었고 시청률이 좋아서 만족감에 또 마셨다. 27살에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어린 나이에 스텝들 관리하며 기분 맞추기 위해 그리고 32살인 지금 팀장의 자리까지 거침없이 오르는 승부욕에 도취되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지금은 어머니의 기도로 탄탄대로 속에 막힘없이 살고 있지만 이러다 갑자기 내가 죽기라도 하면 지옥에 갈텐데...’ 하는 마음이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했다. 방송일이란게 워낙 시간에 쫓겨 며칠씩 밤샘 작업을 하는게 다반사였지만, 주일아침 7~8시에 집에 와도 한 두시간 자고 예배는 꼭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내 육체는 피곤에 절어 교회에는 갔지만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다가 오는 날이 많았다.

주님과의 예비된 만남
그러던 내가 작년 11월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연세중앙교회의 주일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성경말씀을 들어 행함이 전혀 없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강단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불같은 설교를 듣고 가분수처럼 커진 내 머리에 불이 내린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2006년 1월 1일 연세중앙교회에 등록을 했고, 12월 31일에는 윤석전 목사님이 직접 안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청년부에 소속되었으나 유난히 어린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 무척 낯설었고, 청년회 부장의 관심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와중에 맡고 있던 프로그램인 EBS ‘견미리의 살림의 여왕’을 끝내게 되었는데 여느 때 같으면 일이 바로 있어야 하는데 일이 들어오지 않아 한 달에 2번 쉬기도 힘든 스케줄에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주님이 미리 나의 시간을 예약이라도 해 놓으신 듯 청년회 부장이 초교파청년동계성회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고, 참석만 하면 반드시 은사 받고 은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청년회 성회를 통해 꼭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내가 변화되어지길 간절히 사모했다.

간절한 기도와 회개를 받으신 하나님
성회 첫날, 목사님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해와 달을 만들고 좋았더라... 그런데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 모든 천지만물은 하나님께 복종하는데 인간은 뭐길래 하나님 말에 복종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기만한 죄! 너 그 죄를 어떡할래?” 하시는데 내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바로 내 얘기였다. 나도 모르게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하나님 이제 살려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살려 주세요.” 매 시간 설교 말씀은 나의 심령을 뒤 흔들었고, 어릴 적 아버지 지갑에서 돈 훔친 것부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생각나는 죄는 속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울부짖으며 회개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듯 속이 후련하지 않았다. 회개가 덜 됐나? 불안하고 초조했다. 옆에선 방언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부럽기만 했다. 나도 저렇게 하나님과 통했으면... 다시 용기를 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여기까지가 끝입니까? 하나님 저 회개하고 간들 하나님 못 만나면 예전 삶처럼 똑같이 살아갑니다. 저 살려고 주님 앞에 왔습니다. 제 영혼 살려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지만 무엇인가 한계가 느껴졌다.
마지막 날, 목사님께서 “사막에 벌레가 네 얼굴에 앉아 똥을 쌌는데 그 흐르는 똥물을 받아먹어 갈증을 해소하겠다는 갈급한 심정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무릎이 시퍼렇게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정말 이번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하고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는데 갑자기 나의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니 내 몸에서 연기가 나는 느낌이 들면서 혀가 말리는 것이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이제 살았다. 내 회개기도를 하나님이 받아주셨구나!” 하는 순간, 기쁨의 눈물과 함께 감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은혜를 받고 보니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지하철 노방 전도 하시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날 위해 항상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너무 감사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니까 죄 짓기가 싫고 죄를 이길 힘이 생겼다. 어느새 15년 동안 달고 살던 담배도 생각조차 나지 않는걸 보면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이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마음먹으니 친분 있는 사람과 동료들이 “너, 이상해졌어. 너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하면 안되지. 서서히 변해야하는 거야” 하는 비난의 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이에 뒤질세라 그들에게 예수를 전한다. 또한 그전엔 직장이 우선이던 나의 삶은 신앙생활 우선으로 바뀌었고, 새벽기도에 참석해 끊임없이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전도하는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요즘은 또 하나의 작정 기도가 생겼다. 그것은 주일날 촬영 없는 기독교 TV나 신앙생활에 전혀 방해되지 않은 직장으로 인도해 달라는 것이다. 작정 기도 며칠 후 새벽 기도 중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곧 주님께서 내 앞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직도 때때로 정욕적인 생각과 인본주의 생각으로 흔들리는 나를 보며 끊임없이 개조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끈을 놓지 않고 의리를 지키고 싶다. 그리고 갓난아이의 신앙에서 조금은 성숙된 신앙인이 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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