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생애 끝 날까지 붙드소서”
김현민 성도(제36남전도회)

등록날짜 [ 2013-08-07 09:58:46 ]

<사진설명> 아내 김윤희 성도와 함께.  사진 강문구

여덟 살 되던 해 겨울, 어머니가 원인 모를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불교에 심취해 절에서 공부하셨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라 학원과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부처가 되든, 극락왕생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지 불교에서 진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아무리 뒤져 봐도 나의 삶과 죽음 이후 문제를 해결해 줄 진리를 찾을 수 없었다. 좌절 또 좌절.... 재가승(在家僧)인 아버지 밑에서 불교적 가치관 속에 살아온 이십육 년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후 학교도 나가지 않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한 전도자를 만났다. 목회를 앞둔 신학생이었다. 몇 개월 후, 그 신학생이 수원에 교회를 개척했다며 초청했다. ‘교회에 가면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따라나섰다. 찬송을 부를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뜻을 알 수 없어 잠자기 일쑤였다. 그래도 주일마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수원까지 계속 찾아갔다.

6개월쯤 후, 내가 기거하는 신림동 고시원 주변에 새벽예배를 은혜롭게 인도하는 교회가 있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새벽에 한번 가보고는 아예 매일 다녔다. 새벽예배뿐 아니라 예배란 예배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무언지 모를 힘이 자꾸만 나를 교회로 끌어당겼다. 이후 신림동 근처 교회에 나가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님께 붙들리다
하나님의 실존을 더욱 강하게 인식한 때는 2006년도 설에 열린 흰돌산수양관 성회에서였다. 연휴였지만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절에 가서 제사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니, ‘아, 내가 여태껏 죄짓게 하는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살아왔구나!’ 하는 점이 확실히 깨달아졌다. 회개가 터졌다. 어릴 때 친구를 괴롭힌 일까지 기억나서 오열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뜻밖에도 눈앞에 제사상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제사상에다 절을 하는데, 뱀, 원숭이, 각종 뿔 달린 짐승 형상을 한 귀신들이 제사 음식을 먹으면서 절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아, 내가 저런 더러운 제사상에 참예했단 말인가! 저런 귀신을 두려워하며 섬겼단 말인가!’

창자가 뒤틀리듯 밑바닥에서부터 회개가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혀가 꼬이고 방언이 터졌다. 이어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려왔다.

“내가 너를 지목하여 불렀다. 내가 네 인생 끝날 때까지는 붙잡고 놓지 않겠다.”

감격해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다. 울부짖으며 나뒹굴었다. 나 같은 존재가 뭐라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 끝 날까지 붙잡고 놓지 않으시겠다니....

그날 이후, 내 삶의 중심엔 늘 예수께서 계셨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싶었다. 새벽예배 시간이면 몸을 벌떡 일으켜 교회로 달려갔다. 직장에서도 기도하고 싶어서 점심 후에 혼자 실험실에서 기도했다. 직장 동료 중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신우회를 조직했다. 직장에서 함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예수 안에서 성령 충만하게 살고 싶었다.

욕심이라는 덫에 빠져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자 미끄럼틀을 타듯 신앙이 곤두박질쳤다. 여전히 교회에 몸담고 있었기에 내 속사람이 후패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중소기업 연구원으로 만족할 수 없다며 비전을 찾겠다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일 년간 공부해서 현재 다니는 국영 공단에 취직했고, 그다음 해에는 믿음의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전에 교제할 당시 우리는 새벽기도와 신앙생활에 둘 다 열심을 내고 있어서 내가 불교 집안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 영적인 생활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기도의 끈을 놓아 버리니 물욕이 소용돌이치듯 밀려들어 왔다. 대학 동기생에 비하면 직장도 변변찮고 내 집 마련도 못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하루빨리 재산을 형성하고 싶은 욕심에 대출을 껴서 집을 샀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주일 근무에도 지원했다. 진리를 찾던 순수한 청년의 패기는 사라지고 물욕만이 나를 지배했다.

영적으로 방황하던 4년여 동안 아내는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내가 큰 은혜를 받았던 연세중앙교회에 가서 은혜 받고 신앙을 회복하자고 권면했다.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으니 다시 한 번 영혼의 때를 위해 사는 기회를 잡아보라고 호소했다. 절을 세울 정도로 도도히 흘러내려 오는 우상숭배의 저주를 끊고 부모 형제를 구원하려면 정신 차리고 영적인 신앙생활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거부했다. 한번 육신의 소욕과 물욕에 붙잡히니까 내 힘으로는 나를 돌이킬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지난 3월 초에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는 정말 죽겠으니 혼자서라도 연세중앙교회에 가겠다고 나섰다. 내 말이라면 늘 순종하던 아내가 완강하게 나오니까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다.

6년 만에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었다. 선포하는 말씀의 중심에는 여전히 예수가 있었다.

“몸이 교회에 와 있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 아니다. 세상 욕심 따라 살면 천국 못 간다. 예수의 피 공로로 값 주고 샀으니 너희는 성령의 전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죄에서 돌아서라.”

자기 몸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한 치도 양보 없이 선포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예수를 버리고 살아왔는지 확연히 드러났다. 육신의 소욕, 물욕을 버리고 백기 들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나오리라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5월 첫 주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연세중앙교회에서 다시 시작하다
3개월간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면서 많이 회복됐다. 인천에 사 놓은 집이 대출을 많이 끼고 사서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맥추절 감사예배 후 영적인 회복을 위해 월세라도 얻어서 이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예전의 그 세미한 음성으로 감동하셨다. 광야에서 뒤돌아보지 말고 성전 근처로 오라고, 담대하게 집을 계약하라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놀랍게도 함께 기도한 아내에게도 동일한 응답을 하셨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구나’ 확신하며 집을 구하였고, 8월 중순에는 연세중앙교회 근처로 이사할 예정이다.

이번 하계성회 때는 아내에게도 치유 역사가 일어났다. 아내는 장이 기형으로 태어나 소화력이 떨어져 평생 약을 달고 살았고, 처가 식구의 내력인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하계성회에서 아내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지난날 잘못했던 죄를 눈물로써 회개하였을 때, 용광로처럼 뜨거운 불이 허리와 장을 소용돌이치며 달구었고, 평생 통증으로 아팠던 부위가 깨끗이 나았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상숭배에 빠져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자를 부르신 주님, 방황하던 나를 오직 예수가 중심인 연세중앙교회로 불러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나를 붙든 손 놓지 마소서! 

김현민 성도(제36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3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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