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시대와 함께하는 영화 ②
민족은 동포, 외세는 적(?)

등록날짜 [ 2007-08-01 09:41:37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깡패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으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익살스러운 이들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무수한 영화 속에서 깡패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깡패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01년 영화 ‘친구’가 개봉되면서부터 이 패러다임이 깨지게 되었다. 최초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깡패들의 이야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왜 그동안 경상도 깡패는 없었을까?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영화 ‘친구’가 개봉되기 전까지는 역대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들이었다. 전라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처음으로 경상도 깡패가 영화에 등장한 것은 글쎄…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다.
어쨌든 영화는 시대의식과 함께 하며 그 의식에 편승하여 흥행 또는 대박을 노린다. 이번 글에서는 2000년 이후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영화에서 나타난 국가관의 변화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그 중에서도 2005년에 개봉된 ‘천군’과 ‘웰컴투 동막골’에서의 민족의식 강화와 외세 배척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이다.

2005년 10월 30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북한 핵무기 실험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된 것에는 햇볕정책의 시작과 함께 북한을 정겨운 대상으로 묘사해온 한국 대중문화가 일조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1998년 햇볕정책 추진 직후부터 한국 대중문화산업에 ‘통일’이라는 테마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면서 이와 관련된 굵직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우선 남북한 병사 사이 우정은 상업영화의 흔한 소재가 됐다. 2000년 제작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병사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려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5년 최고의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은 전장에서 낙오된 남북한 병사들이 유토피아 같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미군에 맞선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천군’은 남북한이 핵무기를 공동 개발하는 상황으로 시작하며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 강대국 모두를 견제하는 성향이 영화 전반에서 느껴진다는 것.
한국 영화에서 남북한 군인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는 적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0~1990년대 영화와 2000년대 영화는 확연히 달라졌다.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체제하에서 탄생한 영화 속에서 북과 북한 군인은 그 자체로 ‘악’의 상징이었다.
본격적으로 남과 북이 따뜻한 감성을 가진 같은 민족임을 부각시킨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JSA’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남과 북, 남한 군인과 북한 군인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의 흐름은 크게 바뀐다. 2000년은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6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해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이러한 영화들로 인해 국민들의 반공정신이 많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든 것을 영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조는 했다고 본다. ‘웰컴투 동막골’의 은밀한 정치학은 순수한 우리 대 나쁜 그들의 대립, 혹은 순수한 한민족 대 나쁜 외적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천군’처럼 핵무기 같은 마초(남성우월주의)를 찬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나쁜 점은 끝내 이 기만적인 대립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군’과 ‘웰컴 투 동막골’은 남북한 병사가 손잡고 외국군과 싸운다는 설정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뜻인가. 그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던 것일까. 이 영화들이 우리의 의식을 대변했을까.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았던 것일까. 자꾸만 불안해진다.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일어나서도 안될 일임을….

위 글은 교회신문 <1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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