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우리문학이야기(4)
천상으로 뻗어 오른 생명의 문학 - 기독교작가로서 황순원의 재조명

등록날짜 [ 2008-09-23 10:45:01 ]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작가로 알려진 황순원은 실은 시인으로 먼저 등단하였다.
그는 18세 때 주요한에 의해 신예시인으로 문단에 소개되었다. 그는 소설 창작 이전에 이미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그의 시에는 강렬한 생명의 언어들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창작시인 〈나의 꿈〉에서 그는 “생명의 꽃을 가득히 심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고 노래한다. 이듬해에 창작한 시 〈잡초〉에서 그는 광야에 돋아난 잡초를 보고 “여기에 줄기찬 생명이 숨어있지 않는가/ 온 들판을 덮을 큰 힘이 용솟음치지 않는가”라며 잡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읽어낸다.
황순원은 동물보다는 식물을 통해 생명지향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수평적으로 옮겨다니며 영역 다툼을 하는 동물들과는 달리 식물들은 서로 공존하는 가운데 하늘을 향해 수직적으로 자라면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장편소설 《인간접목》이나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동족상잔의 6ㆍ25 한국전쟁으로 상처입은 등장인물들을 나무의 존재에 빗대어 쓴 대표적 작품들로 뿌리를 지닌 나무의 생명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 하고 있다.

창세기의 가인을 통해 본 6ㆍ25 한국전쟁
황순원의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는 동생 아벨을 죽인 구약성서 창세기의 인물 가인을 동족 간에 전쟁을 치렀던 우리민족의 상징적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에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며 에녹이라는 성을 쌓는다. 한국기독교문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움직이는 성(城)》은 바로 가인이 쌓은 에녹성을 역설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성(城)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어 움직여질 수 없는 단단한 건축물인데, 그 성이 움직인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적인 의미로 생명 없는 유랑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기독교 목사로 등장하는 주인공 윤성호는 목회자로서 자신이 지은 간음과 위선의 죄를 회개하고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한 채 도시의 빈민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으로 거듭난다.
반면, 그의 친구인 송민구는 유력한 장로의 딸과 약혼하고 신자가 된 후에도 무속연구라는 미명 아래 우상숭배와 동성애의 죄악에 빠져든다.
송민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영혼 없이 살아가는 부초 같은 유랑민을 상징하고 있다면, 윤성호는 영혼의 뿌리가 땅에 깊이 박힌 채 하늘로 건강한 가지들을 뻗어가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소나기〉의 소년에서 천국의 소년으로
평안남도 대동군이 고향인 작가 황순원은 남북 이산가족이 50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던 모습을 본 지 3개월 후인 2000년 9월 14일, 86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소천하기 두 해 전부터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던 황순원은 고통 없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는데 그의 기도대로 자택에서 잠자던 중에 소천했다. 황순원이 소천하자 많은 문인들은 작가의 위상에 걸맞게 문인장이나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으나, 유가족들은 신앙인이었던 고인의 유지를 좇아 작가가 생전에 출석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담임목사의 주관 아래 기독교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필자는 황순원 선생이 소천하시기 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서 선생 부부께서 손을 맞잡고 긴 횡단보도를 정답게 건너시던 모습을 우연히 뵌 적이 있었다. 노부부의 정갈하면서도 다정하던 뒷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당시 황순원 선생 부부의 모습은 선생의 대표작 〈소나기〉의 두 주인공 소년 소녀의 모습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웠었다고 회상된다. 천국에서 젊고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안식하시는 선생의 모습을 그려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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