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철학박사 김석 교수와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최후 심판을 떠오르게 하는 도시 폼페이

등록날짜 [ 2009-01-13 17:33:16 ]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라

서양 문명의 요람인 고대 로마제국의 영토 이탈리아에는 지금도 다양한 유적과 볼거리가 많이 남아있다. 로마를 지나 지중해의 쪽빛 바닷길을 따라 남부의 아름다운 나폴리만 근처로 내려가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로마제국의 도시와 건축물을 통째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폼페이가 그곳이다. 폼페이는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와 나폴리만이 만나는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던 천연의 항구도시로 기후와 교통이 아주 좋아 제정 로마 당시 귀족들의 휴양지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전형적인 로마양식으로 계획 건축된 폼페이는 8개의 출입문을 갖춘 견고한 외곽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 내부는 인도와 마찻길이 구분된 크고 작은 도로망으로 구획되면서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늘어선 아름다운 도시다. 폼페이에는 신전, 관청, 원형극장 등 공공시설은 물론 세탁소, 약국, 빵집, 공중목욕탕 등 주민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있었으며, 도시 전체에 수돗물이 공급되었다고 하니 로마 문화의 수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번영을 누리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인근 베수비오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켜 용암을 쏟아내고 도시 전체를 2~3m 두께의 화산재와 화산력 속에 파묻어버리면서 1500년 이상을 땅 속에 묻혀 있었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착수하여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으며, 지금은 도시의 형태가 온전히 드러날 정도로 발굴이 진행되었다. 로마를 느끼고 싶으면 폼페이에 가보라. 원형경기장에서는 검투사들을 응원하는 함성이 들리는 것 같고, 시민생활의 중심인 포럼에 서면 당시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올 것 같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은 당시 로마인들의 부와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벽에 장식된 많은 벽화와 낙서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바래지 않은 색상으로 남아 당시 사람들의 풍속과 삶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폼페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시 사람들과 가축의 주검을 석고로 뜬 상들이다. 화산재가 주민들을 덮쳐 살아 있는 동상처럼 순식간에 응고시켰는데 나중에 사체가 썩고 남은 빈곳에 다시 석고를 부어 주검을 되살렸다. 박물관의 석고상들을 보면 전시된 얼굴의 표정까지는 재생을 못했지만 죽는 순간의 마지막 자세를 통해 최후 순간의 공포와 절망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잠시라도 보호해주려고 했던 수그린 어머니와 구석에서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쭈그리고 앉아서 죽은 사람의 모습이 당시 비극을 전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제일 먼저 화산구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 덩어리들이 찬 공기에 굳으면서 비처럼 쏟아진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폼페이에는 약 2시간 동안 1억 톤이 넘는 돌비가 뿌려졌을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연기와 불덩이 및 분진이 범벅이 된 뜨거운 검은 화산재가 태양을 가리면서 주변을 겹겹이 덮는다.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화산재에는 이산화탄소 등 유독가스와 뜨거운 용암의 열기가 들어 있어서 그것에 접촉하는 순간 피부가 증발하고 뇌가 터져 나가면서 열충격으로 생명체가 죽는다고 한다. 마치 고온의 불덩이를 입과 코를 통해 삼키는 것과 같다.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폼페이의 유적지에 서면 자연스럽게 성경에 나와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떠올리게 된다. 창세기에 의하면 여호와가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어 성에 거하는 모든 생명들을 다 엎었다고 한다.
화산폭발로 인구 2만이 넘게 번성하던 폼페이도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하게 되었다. 수백 년 후 다시금 얼굴을 드러낸 폼페이는 삶의 뒤에 늘 죽음이 있고, 인생의 영화가 한 순간임을 깨닫게 만든다. 인적이 끊긴 폼페이의 유적은 삶이 절정에 이르는 최고의 순간 우리는 늘 죽음을 대비해야 함을 오늘도 생각하게 만든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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