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찬양 속에 숨겨진 '행복의 코드'

등록날짜 [ 2009-06-16 18:14:32 ]

우리는 마음이 기쁘거나 즐거울 때, 굳이 타인이 종용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슬프거나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는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노래하지 않는 이유, 노래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하다’와 ‘불행하다’라고 느끼는 생각의 차이가 사람의 마음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행복할 수는 없을까?



행복은 ‘얼마나’가 아닌,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
인류는 그 시작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였으며, 또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행복을 소유하길 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행복을 찾기 위해 갖은 수고와 땀을 흘리며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행복이라는 것을 소유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보면, 행복이라는 그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단순한 그러나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소유할 수 있는가, 또는 얼마나 소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닌,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담과 하와가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우려 했기 때문이다. 소유하려고 했으나, 결국 하나님이 주신 것마저도 모두 잃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과연 우리가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슬픔’과 ‘수고’가 있을 뿐인 이 세상에서 이 두 가지는 분명 찬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슬픔’과 ‘수고’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것도 아니며, 주시길 원치도 않으셨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자 축복의 통로이며, 그 ‘찬양’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슬픔’과 ‘수고’를 극복할 수 있는 ‘찬양’이라는 놀라운 해결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크나큰 축복이다. 그 찬양 속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담긴 ‘영적인 코드’, 즉 ‘행복의 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비를 가리지 않고, 항상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절망 가운데 더욱 빛나는 찬양
사도행전 16장 25~26절을 통하여 진실한 기도와 찬양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므로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한 곳은 한적하고 고요한 기도처나 예배당이 아닌 바로 감옥이었다. 온갖 죄수들로 가득한 그런 곳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억울해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 드렸던 것이다. 또한 욥기 1장 21절에도 이유 없이 당하는 온갖 고난과 역경 가운데에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욥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세상의 고난과 핍박은 결코 바울과 욥을 결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기도와 찬양으로 자유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찬양’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각자 선택의 몫이다. 만약 바울과 욥이 누리던 영원한 ‘행복’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고백을 통하여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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