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소리로 그린 풍경화, 드뷔시의 음악
클래식 음악 친해지기- 드뷔시

등록날짜 [ 2010-01-25 13:50:37 ]

색채 감각으로 한 폭의 그림 그리듯 표현
보이지 않는 소리로 보이는 것 묘사 뛰어나

지난 1월 9일(토)  세 번째로 우리 교회를 찾은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작곡가라 할 수 있는 라벨과 드뷔시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작품 - 라벨의 ‘스페인 광시곡’과 ‘라 발스’(왈츠),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를 선보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서울시향 홍보부장이 “오늘 연주될 곡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편안하게 들어 달라”고 강조한 것은 아무래도 그날 연주된 곡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보다는 어렵다는 반증이었으리라. 일반적으로 클래식을 꽤 좋아한다는 사람도 모차르트, 베토벤 등 독일 작곡가의 음악에 더 친근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드뷔시 등 프랑스 음악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나 누리는 듯하다. 이번 호에서는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를 중심으로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을 조금 맛볼까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국경이 맞붙어 있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이지만 그들의 국민성은 인접한 국가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판이하다. 독일 사람들이 대개 근검절약하고 체계적이며 질서 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데 반하여 프랑스 사람들은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며 자유로움을 더 추구한다.
음악에서도 그러한 국민성이 나타나는데 독일인들은 음악을 건축물과 같이 먼저 튼튼한 반석을 쌓고 그 위에 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듯 질서 정연하게 건축해 간다고 생각하는 반면, 프랑스인들의 음악은 마치 한 편의 회화를 그리듯 화려한 음색(음의 색깔)을 구사하며 음을 흩날리듯 그려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드뷔시가 활동하던 19세기 말엽부터는 미술 화풍에 인상주의가 등장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로 드뷔시 자신도 그러한 인상주의 작품들에 상당히 몰입했다고 한다.

드뷔시의 생애
클로드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프랑스 산 제르만 안 레이에서 태어나 1918년 3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인 드뷔시는 20세기 초엽 근대음악의 대표자이며, 인상파음악을 창시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근대음악에서 제일 먼저 낭만음악에 반기를 든 사람이 드뷔시였으며, 음악을 감각적인 면에서 구성하는, 이른바 인상주의를 주장한 개척자로서 그를 인상파음악의 시조이자 완성자라고도 한다.
도자기 상회를 경영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해군에 보내려고 했으나, 모테 부인에게 발견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11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했으며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처음 들어 보고 열광했다고 한다. 당시의 인상주의 시인 보들레르와 발레르, 말라르메 등의 시인들과도 친교를 가졌다. 그러한 영향은 후에 인상주의 음악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드뷔시(오른쪽)는 음악의 색채와 이미지를 인상파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을 통해 색채를 발견했다면, 드뷔시는 음악을 통해 색채를 발견했다. 왼쪽 그림은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1890년~1891년)

인상주의 음악
드뷔시가 주장한 인상주의 음악은 원래 미술계에서 일어난 운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외계의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인상만을 표현한 것이다. 드뷔시는 이것을 음악에 옮기려고 했고 당시 문학에서 쓰이던 상징주의, 즉 반자연주의적인 태도에서 주관적인 기분을 표현하고 명확한 관념보다는 막연한 느낌, 환각과 같은 정조를 중요시하는 상징주의를 음악에 실현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선을 취급하는 법칙, 즉 조성이라든가, 음계라든가, 대위법도 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고 규칙적인 박자의 관념도 없어지는가 하면 까다로운 화성법도 기능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색채적으로만 취급되었다.
그러한 색채적인 감각과 시와 미술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듯 쓴 작품이 교향시 ’바다’인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로 보이는 것보다 더 뚜렷이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위 글은 교회신문 <1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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