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영화이야기 신앙이야기

등록날짜 [ 2010-04-19 08:19:48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스포츠 영화이지만, 가족애를 다루고 있다. 백인 가족의 일원이 된 흑인 거구 마이클은 미식축구에서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훌륭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해 나간다. 보잘것없을 것 같았던 인생이 전 미국을 사로잡는 미식축구계의 스타로 발돋움하며 지금도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흑인 미식축구 선수의 삶 그린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빈민촌의 어둡기만 했던 삶이 가족 사랑으로 변화돼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도 천국의 소망으로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미식축구도 개인보다는 팀을 강조한다. 미식축구에서는 쿼터백이 가장 중요한데 팀을 진두지휘하는 장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쿼터백도 강력한 라인맨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쿼터백을 보호하는 라인맨은 상대편 공격수들을 온몸으로 보호한다. 미식축구팀의 라인맨에는 거구들이 많은데 상대팀 라인맨들과 충돌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팀원을 위해 온몸으로 방어하는 라인맨들의 살신성인 정신은 잦은 부상으로 나타난다.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뜻하는 말인 ‘블라인드 사이드’를 제목으로 한 이 영화는 현재 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라인맨으로 활약 중인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족은 삶의 가장 큰 배경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백인 상류층인 앤의 가족은 추운 날씨에 셔츠만 걸친 거대 체구의 ‘마이클 오어’를 발견한다. 가족도 없이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마이클을 본 앤은 하룻밤만 재워주고 돌려보내려 했지만 계속 그를 보살피게 된다. 가족은 점점 마이클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마이클은 미식축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최고 스타가 된다. 현재 미국 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활약 중인 26살의 프로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성공 실화다.

오갈 데가 없는 불우한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와 앤의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가족이 된다.

일방적이지 않는 사랑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앤 역할의 샌드라 블록은 “마음이   합쳐지지 않고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앤의 가족들은 백인 우월의식에서 비롯된 위선이 아니라 진심을 보여줬다”고 감탄한다.

그녀는 “앤의 가족과 마이클은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과 같은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앤의 가족이 마이클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가족으로 받아준 것은 사실이다. 이는 대단히 멋진 일이다. 하지만 마이클 역시 앤의 가족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일깨워준다. 앤의 가족은 세상의 모든 행복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마이클을 통해 그들 삶에 빠져 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게 된다”고 밝혔다.

빛의 자녀로 사는 우리
마이클은 험상궂게 생긴 거구에다 흑인이며, 빈민촌의 불우한 아동 시절을 겪은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백인 상류층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영화는 사회의 낙오자로 숙식조차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실상 그의 출신 배경은 나쁘지만 그의 잠재 능력은 출신과 상관없이 충분하게 발휘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영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가 영적인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어둠의 자녀(?)들을 위해 천국의 자녀로 바뀔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모두에게 천국의 한가족이 될 수 있는 양자의 영을 주신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어둠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빛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을 말한다.

옛말에 ‘파리도 천리마(千里馬)의 꼬리에 붙으면 천리를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능력은 겨우 파리와 같지만 예수님과 함께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능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결국 천국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히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어둠이 다시 우리를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당당히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8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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