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성탄절 ‘전 성도 찬양대’ 찬양곡 소개

등록날짜 [ 2016-11-30 13:37:05 ]



성탄절 ‘전 성도 찬양대’
구원주 예수께 진실한 찬양 올려 드릴 터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은 12월 25일(주일) ‘성탄절 전 성도 찬양대’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린다. 2012년 5000명 찬양대로 성탄 감사 찬양을 시작한 이래, 2013·2014년 ‘1만 명 찬양대’를 거쳐 지난해에는 ‘전 성도 찬양대’가 온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며 찬양을 올려 드리자는 취지로 전 성도가 찬양한 것이다. 이번 성탄절에 전 성도가 하나님께 올려 드릴 찬양 세 곡의 의미를 짚어 본다.

■헨델의 <메시아> 中 ‘할렐루야’
‘메시아’는 ‘그리스도’의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 ‘구원자’라는 뜻이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은 <메시아>란 곡을 써서 예수 생애 즉 성경의 예언대로 탄생하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온 열방을 다스리심을 합창과 독창을 섞은 모음곡인 오라토리오 형식을 빌려 묘사 했다.

그 중 ‘할렐루야’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 편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이다. “전능의 주가 다스리시네” “왕의 왕, 주의 주”가 반복되고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또는 “오! 하나님 찬양합니다”라는 감탄사에 가까운 ‘할렐루야’가 절묘하게 삽입된다. 반복되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는 가사에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는 성령의 일침이 들리는 듯하다.

1742년 런던에서 <메시아>가 처음 연주될 때, 영국 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합창을 듣다가 몹시 감동하여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일이 계기가 돼 오늘날 이 부분을 연주할 때마다 청중이 일어나는 전통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 찬양을 올려 드릴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모든 삶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진실하게 고백해야 한다.


■찬송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 유명한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만큼 성탄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 주는 찬송가는 없을 것이다. 영국 작사가 아이작 왓츠(Isaac Watts, 1674~1748)는 시편 98편을 배경 삼아 가사를 썼다. 거기에 헨델이 곡을 입혔다. 온 땅이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치며 노래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죄를 사하려 오셨기 때문이다. 은혜와 진리 되신 주님을 모든 교회가 맞이하고 만국 백성이 다 경배하라는 찬양이다. 시편과 영어 가사 원문을 보면 주님의 구원 계획과 사랑이 ‘기이하다(wonder)’며 반복 표현하고 있다.

영원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엡3:11)을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창조주를 사랑하고 그와 교통하도록 인류를 지으시고, 선택할 의지를 주셨다. 그 의지를 잘못 써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처음부터 당신의 생명까지 걸어 두신 ‘기이하고’ ‘놀라운’ 사랑이다. 선악과를 지으실 때 이미 자기 생명을 거실 각오를 하셨다는 놀라운 계획을 안다면 굴복당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랑이다.

창세 전부터 나를 위해 준비되신 그리스도는 생명 바쳐 지켜 주신 약속이다. 오신 그가 누구신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이보다 기이하고 기쁜 일이 어찌 있으랴. 전능자가 나 때문에 이 땅에 오셨다!


■우리 교회 자작곡 ‘구원의 이름 예수’
성탄절 전 성도 찬양 마지막 순서로 복음 전도에 온 맘을 다하는 우리 교회에서 만든 ‘구원의 이름 예수’를 올려 드린다.

오랜 세월 세상 습관에 젖어 살다가 예수를 만났을 때, 곧바로 과거 행실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진정 예수를 만난 사람이라면 성경 지식이 있건 없건 자신이 만난 예수, 경험한 복음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바로 전도했다. 주님은 이 놀라운 은혜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전파하기를 바라시고 우리에게 교회의 사명을 맡기셨다.


많은 사람들 죄악으로 멸망 가운데 서 있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어둠 속을 헤매이고 있네
주의 보내신 독생자 너희 위해 피 흘리사
모든 압제에서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너희를 구원했네
세상 어떤 이름도 구원 없네
죽음에서 나를 구원하신 이름은 오직 예수
구원의 이름, 능력의 이름, 예수

-‘구원의 이름 예수’ 가사

하나님의 시간표는 종말을 가리키고, 마귀는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더욱 사나워져서 ‘그리스도’와 ‘성탄’이라는 말 조차 지워 버리려 한다. 성탄절의 주인공을 산타클로스로 뒤바꾼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차별 금지’라는 명분으로 미국을 비롯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다. 그러나 세상 권세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우리는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한 분을 찬양하려 한다.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한 아기, 한 아들, 그의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 그 이름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그분은 예수, 그분은 그리스도,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이시다. 아멘.

/박성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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