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잘 지키고 있나요…천국 에티켓?
클래식과 친해지기

등록날짜 [ 2017-06-27 15:16:52 ]

때와 장소에 알맞게 취할 행동 양식 ‘에티켓’
천국에 걸맞은 예배 예절 갖췄는지 돌아봐야

누구나 평생 잊히지 않는 민망한 기억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유독 그런 아찔한 기억이 많은데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실수 한 가지를 고백한다.

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장 중 슈테판 대회당에서 열린 부활절 기념,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관람할 때였다. 음악 도시 비엔나에 와 있다는 가슴 벅참, 공연장의 고색창연함 그리고 최고의 오케스트라·솔리스트·합창단의 연주 모습을 맨 앞자리에서 만나는 황홀함이란….

공연이 무르익을 즈음, 메조소프라노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너무도 애절하게 노래했다. “주님 채찍 맞고 가시관 쓰셨네. 그 얼굴 피로 물드셨네….” 마치 마리아의 흐느낌을 표현하는 듯했다. 그때 어디선가 회당 전체를 찌르는 소리가 들렸다.

“딴 따라 딴 따라 따라라라 라라라라~”

필자의 핸드폰 소리였다. 설상가상 벨 소리는 경쾌한 ‘카논’의 록 버전이었다. “오, 주여! ㅠㅠㅠㅠ” 지금도 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때면 감동적이고 애절한 이 독창 부분에서 필자의 마음이 더욱 찢어지게 아픈 이유를 남들은 모를 것이다.

교양의 입장권, 에티켓
음악회나 특별한 연회에 들어갈 때는 표(티켓, ticket)를 소지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장소와 경우에 맞게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 양식인 교양(敎養)의 티켓, 즉 에티켓(etiquette: 티켓에서 파생된 불어 버전)을 갖추는 것이다.

에티켓은 ‘옷차림’ ‘박수 타이밍’ ‘음식 예절’ ‘목소리 크기’ 모두 포함하지만 모든 에티켓의 본질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주인이 베푼 선의에 존경을 표하고 주인의 격을 떨어뜨리지 말 것. 둘째,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를 명심하고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생소함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무지는 이해받을 수 있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 에티켓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갖출 에티켓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에 천국에서 갖춰야 할 에티켓을 직접 설명해 주셨다.

“천국은 혼인 잔치와 같다.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열어 초대장을 보냈지만 초대받은 이들이 이를 거절했다. 다시 종들을 보내 소와 살진 짐승을 마련했다고 풍성한 만찬을 소개하며 초대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자기 생업을 하겠다며 가버렸다. 소식을 전한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격노한 임금이 그들을 모두 진멸하고 사거리에서 아무나 청하게 했더니 노숙자에서 거지, 잡상인,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사람이 다 와서 혼인 잔치가 들썩거렸다. 거기서 임금이 손님 중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왜 그런 차림으로 왔느냐“ 물었을 때 저가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임금은 그를 결박하여 바깥 어둠에 내어 쫓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했다.

여기서 ‘의복’이란 요한계시록 속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은혜 입은 성도들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계19:8),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한다. 또 무엇보다도 회개를 통해 어린 양의 피에 의복을 깨끗이 빨아 하얗게된 두루마기(계22:14)를 의미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천국 잔치에 걸맞는 에티켓을 갖출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예배는 천국 잔치의 표상이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절차다. 그 귀한 예배를 드리러 오는 우리의 에티켓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주인에게 맞는 존경과 예를 갖추고 둘째, 다른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성도의 옳은 행실, 즉 에티켓을 지참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신경 써야 한다.

먼저 ‘주차’ 면에서 예배 에티켓을 살펴보자. 빈자리가 많은 데도 주차장 입구 일부를 막거나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차를 세워 수많은 성도를 불편하게 하는, 교회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이용하는 지혜(?)를 정말로 지혜라고 여기고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는 성도들이 있어 안타깝다. 에티켓을 잃은 주차는 처음부터 예복을 잃은 것과 같다.

예배 에티켓 중 신경 써야 할 또 하나가 핸드폰이다. 예배드리다 보면 ‘세상에 별의별 벨 소리가 다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비엔나 사건이 떠올라 예배 시간에 핸드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괴롭기만 하다. 무엇보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 전하는 주의 종들의 집중을 어지럽히고 성령의 감동을 끊는 훼방처럼 느껴져 민망하고 낯 뜨겁다.

결혼식에 늦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신부(新婦)가 주례사 도중에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예배드리는 우리 모습이다. 축도와 송영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먼저 나가서 에티켓을 날려버리거나, 다른 성도의 불편은 개의치 않는 주차나 자리 착석, 예배당에서 떠들기, 붕붕 대는 핸드폰의 진동이나 벨소리 방치하기, 핸드폰을 잠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않기, 말씀 도중에 졸기 등의 행동을 일삼으면 두렵건데 혼인 잔치에 참예할 예복을 마련할 수 있을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이해된다. 예배에 올 때 아예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올까도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주일 하루만이라도 그것 없이 더 잘산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될 터다. 
 
진정 초대받아야 할 곳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지 못해도, 베르사유 궁전에 못 들어가도 상관없다. 초청장을 받을 자격이 눈곱만큼도 없는 시정잡배가 주님께 놀라운 은혜를 입어 천국 잔치에 청함받았다. 그렇다고 잔치에서 아무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누추한 만큼 더 신경 써야 한다. 주인이 물어보실 것이다. 너의 예복은 어디에 두고 핸드폰만 들고 왔느냐고.






헨델 <메시아>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3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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