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원수의 노래’인 결혼행진곡 (1)
클래식과 친해지기

등록날짜 [ 2022-03-15 10:49:23 ]

反유대주의자 바그너 곡과

유대인 멘델스존의 작품이

결혼식 입장과 퇴장에서 

늘 함께 연주돼 아이러니



<사진설명> (왼쪽)펠릭스 멘델스존과 (오른쪽)리하르트 바그너.



결혼식에 참석해 듣는 곡이 있다.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 ‘결혼행진곡’과 결혼식을 마치며 신랑 신부가 힘차게 행진할 때 나오는 ‘축혼행진곡’이다. 그런데 이 두 곡이 각각 시대의 앙숙이던 두 음악가의 작품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딴-딴-따단.” 순백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할 때 울려 퍼지는 차분한 이 음악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에 나오는 ‘혼배합창곡’이고, 예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희망찬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 연주되는 행진곡은, 멘델스존이 17세에 작곡한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의 결혼식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1858년 영국 빅토리아 공주와 프로이센의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서 연주된 후 일반인의 결혼식에서도 널리 연주되었다.


같은 시기 태어났으나 대조적 인생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19세기 독일 음악을 말할 때 어느 한쪽을 빼면 균형이 무너질 정도로 대척점을 이루는 작곡자들이다. 유대인인 멘델스존과 유대인을 페스트에 비유한 바그너.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의 곡이 결혼식에서 늘 함께 연주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함부르크의 은행가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펠릭스(Felix, 행운아)’라는 그의 이름처럼 한평생을 유복하게 살았다. 멘델스존은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지적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범상치 않은 두각을 나타낸 ‘엄친아’였다.


그렇지만 그는 유럽인·기독교인의 무의식 속 공공의 적인 유대인이었다. 그 탓에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차별받지 않으며 살아가도록 기독교인이 되게 했고, 멘델스존은 자신이 유대인이란 것보다 독일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독일 음악가였다. 멘델스존은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슈베르트의 여러 작품 등을 재발견해 그 가치를 세상에 알렸고, 독일 음악가들이 유럽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물심양면 후원한 사람이었다. 또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하고 슈만과 같은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해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라이프치히를 명망 있는 음악도시로 만들었다.


반면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그너는 전 유럽을 방황하며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연상의 여배우와 결혼한 후 쾨니히스베르크에 정착했지만 정착생활은 잠시, 얼마 후 빚쟁이들에게 쫓겨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돼 라트비아, 파리 등 전 유럽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녀야 했다.

독일 음악계 만연하던 반유대주의


멘델스존과 바그너를 대립하는 대상으로 만든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1889~1945)였다. 바그너는 독일적인 게르만 신화를 이상으로 삼아 게르만 민족에게 긍지를 심어 줄 오페라 작곡과 이론 정립에 노력했고, 이러한 바그너의 모습과 사상을 후대의 히틀러가 발견하고 심취하면서 이미 죽은 이 두 작곡가를 물과 기름처럼 갈라지도록 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독일인의 우수성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예로 우상화한 반면, 유대인인 멘델스존의 음악은 짓밟고 격하했다. 박물관에 있던 멘델스존의 모든 유품과 악보를 불태웠고 라이프치히 시민이 그를 기념해 세운 동상도 철거했다.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유명한 가곡도 유대인 출신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멘델스존이 곡을 붙였다는 이유로 당시 히틀러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이 시기에 유대인 작곡가들은 수세기 동안 이어 온 반갑지 않은 사회적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유대인 이름을 자기 국가에 맞게 개명했다. 그랜드오페라 최고의 작곡가라고 칭송받는 ‘자코모 마이어베어’는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야콥 리프만 마이어’가 본명이었지만, 이름을 이탈리아식 ‘자코모’로 바꿨다. 멘델스존도 기독교로 개종하고 ‘바르톨디’라는 이름을 뒤에 덧붙여 유대인임을 감추려 했다.


당시 독일 음악계는 유대인 작곡가의 작품에 대해, 음악이 낯설고 비독일적인 감상성과 애절함으로 유대인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평했다. 예를 들어 유대인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에 클라리넷이 자주 나오며 구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의 출신 배경이 음악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식이었다.


작곡가이자 비평가로 활동한 ‘로베르트 슈만’도 마이어베어의 작품에 대해 추잡하고 부자연스러운 음악과 천박한 리듬이라고 평했다. 물론 비평가로서 슈만이 찬사를 보낸 작곡가는 거의 없기에 마이어베어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이 같은 비평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독일 음악계 분위기는 유대인의 작품을 예술이 아니라 민족적 특징의 발현으로 간주하곤 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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