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복권 사셨나요?

등록날짜 [ 2004-01-05 15:38:53 ]

로또 복권 사셨나요? 그러면 ‘14, 15, 26, 27, 40, 42’이 6개의 숫자를 기억하시나요? 이것은 벼락을 16번 맞거나 빙하시대부터 매주 복권을 살 경우에 당첨될 850만 분의 1의 확률을 가진 로또 복권 1등 당첨 번호, 그 행운의 숫자들입니다. 전국에 휘몰아 쳤던 ‘인생역전 열풍’은 지난 8일 밤에 64억3000만원씩을 나누어 갖는 13명의 돈벼락 인생들을 내 놓고 일단락 되었습니다. 이 소용돌이의 한 복판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은 믿는 자건 아니건 간에 대다수 국민들 마음 속에 견고히 뿌리 내린 한탕주의였습니다. 이 대박의 환상 열차 앞에는 1인당 10만원 구입제한이나 청소년 구입불가 등의 안전장치는 무의미했습니다. 전국을 돌며 사재기를 하는가 하면, ‘로사모’ 라는 카페까지 생겨났다고 하니까요. ‘인생 역전’을 꿈꾸다 많게는 천만 원, 적게는 한 달 월급을 날린 사람들은 허탈해 하면서도 될 때까지 하겠다는 오기까지 부리고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습니다. 제가 아는 그녀도 이 불운한 무리들 중의 한 사람 입니다.

“67억 받으면 교회 건축 헌금도 보란 듯이 내고 번듯한 내 집도 마련 하려고 했는데...” 대박의 꿈이 빗겨가 버린 후 허탈감에 빠져 버린 그녀의 읊조림입니다. 10년 지기라 이젠 여느 소꿉 동무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는 그녀는 모 교회에서 집사로 충성하며 집안도 알뜰하게 꾸려가는 서민 가정의 평범한 주부였지요. 5급 공무원이라 박봉인 남편의 월급을 쪼개어 식구 몰래 6년간 모은 쌈 지돈 5백만원! 그것을 톡톡 털어 이번 로또 행렬에 쏟아 부었는데 참담한 결과를 맞았던 겁니다.

“그게 어떤 돈인데, 어떻게 모은 돈인데... 하나님께 벌 받은 거야, 건축 헌금으로 냈다면... 하지만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 값을 보면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기 전에 나 같은 서민이 어느 세월에 번듯한 내 집을 마련을 하겠어? 그래서 뛰어든 건데, 누구는 무슨 복이 많아서 그 많은 돈을 거머쥐고... 역시 나는 돈 복이 없나 봐... 잘 될 것 같았는데...”

1등은 고사하고 2등 명단에도 오르지 못함을 그녀는 무척이나 억울해 했습니다. 마치 자기 몫의 돈을 남에게 빼앗긴 사람처럼 말입니다. 옥상 텃밭에서 손수 키운 채소들을 밥상에 올리며 얼굴 위에 살포시 떠오르던 그녀의 소박한 미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 5백만원이나 됐다며 하나님께 감사 헌금을 올리던 눈부셨던 그 행복한 표정도 앞으로 한동안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로또 복권과 같은 도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박의 꿈이 빗겨 갈 때 그 거품 속에 빠졌던 깊이, 그 만큼 마음이 황폐해져 버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창의적으로 일하도록 교훈했고(엡 4:28), 스스로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또 일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자기가 번 양식을 먹으라고 충고합니다(살후 3:12). 건강한 노동을 통한 정당한 대가만이 인간을 영육간에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노동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루어 나가기엔 너무도 역부족인 것이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이지요. IMF 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의 격차,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 ‘미 이라크 전쟁 초읽기’ 등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이 어수선 하기만 합니다. 이 속에서 위의 말씀들은 어쩌면 이 땅의 이치와는 어긋나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성경은 또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4:23)고 말입니다.

세상의 로또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안에 혹시나 자리 잡았을 영적 로또를 밀어내야겠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생활원리를 다시금 되찾아야 겠습니다. 때로 가난하고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감격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낮아진 마음을 지켜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선포할 진정한 양심의 등불, 그분의 탁월한 선택을 받은 자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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